왜 비밀번호를

2부 열쇠는 문을 열고, 기다림은 사람을 연다.

by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qN4ooNx77u0&list=RDqN4ooNx77u0&start_radio=1&rv=Y8R-zl7SDUU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봐 문을 닫을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어 그리고 플레이를 눌러



문이 열리지 않는 동안 저녁은 조금씩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창밖에서 시작된 어둠은 가장 먼저 유리의 투명함을 가져갔다. 그다음에는 복도의 색을 가져갔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표정을 가져갔다.


저녁은 언제나 빛을 끄는 일이 아니라 경계를 흐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안과 밖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하루와 내일이 서로의 그림자를 밟기 시작한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기다림이 오래되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로, 사진의 색이 옅어지는 속도로 움직인다. 눈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지만 시간은 그 사람을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옮겨 놓는다.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는 특유의 고요가 생긴다. 말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서둘러야 할 이유가 하나씩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세상은 기억하는 기술을 끊임없이 발명했다.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자동 로그인을 켜 두고, 얼굴을 비추거나 지문을 올려놓으면 문이 열린다.


사람의 기억은 점점 기계 밖으로 이사했다. 잊어버릴 걱정은 줄었지만, 이상하게도 잊히는 마음은 더 많아졌다.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외우며 사람을 기억했다. 지금은 이름을 검색하면서 사람을 찾는다.

예전에는 주소를 외우며 길을 사랑했다. 지금은 지도가 길을 대신 기억한다.



편리함은 늘 무언가를 덜어 주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몸에서 떼어 간다. 사람은 손이 편해질수록 손끝으로 기억하던 것들을 조금씩 잃는다. 그러나 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억이 있다.



오래 안아 본 사람의 어깨 높이.

겨울이면 자연스럽게 주머니를 찾는 손.

비 오는 날 우산을 기울이던 방향.



이런 것들은 숫자처럼 외운 적이 없는데도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사랑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언어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오래 잊었다고 생각한 이름 하나를 듣는 순간, 마음보다 먼저 손끝이 떨린다. 기억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계절을 먼저 아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꾸 비밀번호를 잊는 이유는, 세상이 너무 많은 문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현관문.

은행.

메일.

회사.

컴퓨터.

수없이 많은 잠금장치.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신원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에서 사람은 조금씩 의심하는 존재가 된다. 문은 열기 위해 존재하는데, 잠금장치는 먼저 의심하는 법부터 배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적적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89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8화왜 비밀번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