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끝내 마르지 않는 부분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GhUVX3-A18&list=PLppVAByvRddUENQPuuFFhhGtTA12ienLJ&index=16
베란다에는 오후가 널려 있었다. 셔츠 몇 장과 수건, 양말 한 짝이 뒤집힌 채 매달려 있었고, 플라스틱 집게 하나가 바람에 조금씩 부딪히며 딱, 딱, 소리를 냈다. 그런 소리는 대개 너무 작아서 아무 의미도 없는데.
혼자 오래 살게 되면 인간은 의미 없는 소리를 오래 듣는 재주부터 생긴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멈칫할 때의 쇳소리, 벽을 타고 흐르는 윗집 물소리. 그리고 젖은 천이 공기 속에서 천천히 식어가는 냄새.
어떤 계절은 온도로 오는 게 아니었다. 수건이 마르는 시간이 달라질 때 먼저 도착했다. 장마철에는 하루가 지나도 축축함이 남았고, 겨울엔 두꺼운 맨투맨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여름엔 아침에 넌 티셔츠가 점심 무렵이면 이미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대개 벚꽃이나 첫눈 같은 것으로 계절을 기억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삶을 움직이는 건 훨씬 사소한 변화들이다. 슬리퍼 바닥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감각, 현관문 손잡이에 남은 체온, 마트 냉장 코너 앞에서만 잠깐 살아나는 피부 같은 것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에는 인간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둥근 통 안에서 옷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다시 엉키는 광경 때문인지도 몰랐다. 검은 티셔츠는 하얀 양말의 보풀을 끝내 떼어내지 못하고, 얇은 셔츠는 꼭 다른 소매 안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어떤 천은 물을 오래 머금고, 어떤 것은 너무 쉽게 가벼워진다. 그 차이를 손바닥으로 쥐어짜면서 알게 된다. 오래 젖어 있는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걸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밤새 통화하거나, 비밀을 공유하거나,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일 같은 것.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건 대체로 시작에 가까웠고, 진짜 가까움은 다른 곳에서 생겨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상대의 침묵이 어느 정도 길어지면 피곤한 상태인지, 아니면 견디고 있는 중인지 구분하게 되는 순간. 냉장고 안에서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두부를 발견했을 때처럼 애매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저녁.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며칠을 흘려보내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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