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었다는 것과 낡았다는 것은 다르다
요즘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사전보다 AI를 먼저 엽니다.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고, 긴 자료를 요약하거나 서로 다른 정보를 비교해 달라고도 합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아이디어를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내밀며 다른 표현을 찾아 달라고 합니다. 몇 초만 기다리면 화면에 답이 뜹니다. 처음 AI를 접했을 때는 그 속도와 능력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자주 사용할수록 감탄과는 다른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AI가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때는 많이 아는 것이 힘이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사전을 뒤지고 도서관에서 바카라을 찾았습니다. 필요한 자료 하나를 구하기 위해 며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오래 공부하고 많은 바카라을 읽어 머릿속에 쌓은 지식은 한 사람의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을 열어 AI에게 물으면 몇 초 만에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번역하고 비교해 줍니다. 개인이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양의 정보를 AI는 순식간에 불러옵니다.
그렇다면 평생 배우고 경험하며 쌓아 온 것은 이제 낡은 자산이 되어 버리는 것일까요. 특히 나이가 든 사람에게 AI는 반가운 도구이면서도 마음 한쪽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하고, 어제 배운 프로그램이 오늘 달라집니다. 하나를 익혔다 싶으면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납니다. 젊은 사람들은 몇 번 눌러 보고도 금세 새로운 기능을 찾아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과연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바오콘의 『AI 교양 수업』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AI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는 바카라입니다. 생성형 AI와 프롬프트에서 초지능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할 기본 개념을 다루고, AI를 일과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단순한 AI 사용 설명서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삶과 일자리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변화 속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바카라 표지의 ‘AI 잘 쓰는 사람과 쓸 줄 모르는 사람의 미래는 다를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결국 저자의 관심은 AI 자체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향합니다.
특히 눈에 들어온 부분은 11강 「인간과 함께 춤추는 무대」의 ‘가치의 재구성: AI의 바다 한가운데 등대가 되다’였습니다.
저자는 산업혁명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두려움을 오늘의 AI 시대와 연결합니다. 증기기관과 자동화된 기계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빼앗을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기계가 대신한 노동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밀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고, 인간이 해야 할 일도 달라졌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AI 혁명은 그때와 닮았으면서도 다릅니다. 산업혁명의 기계가 주로 인간의 손과 발을 대신했다면 AI는 인간의 머리가 해 오던 일까지 넘나듭니다. 정보를 찾고 분석하고 번역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과 그림을 만들고 사람과 대화합니다. 오랜 시간 공부해야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을 질문 하나로 정리해 주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기계가 육체노동을 빼앗을까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AI가 지식노동까지 가져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긴 것입니다.
295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AI 시대에 대체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고방식이다.”
― 『AI 교양 수업』, 295쪽
저자는 이어 AI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발전의 도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를 대비합니다. 같은 AI가 누구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누구에게는 이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밀려나는 사람을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기술에 서툰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어제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변화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경험과 연결한다면 오래 살아온 시간은 약점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296쪽에서 저자는 AI 혁명이 산업혁명과 무엇이 다른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이전에 겪은 것이 산업의 혁명이라면 이번에는 지능의 혁명이다.”
― 『AI 교양 수업』, 296쪽
산업혁명의 기계가 주로 육체의 능력을 확장했다면 AI는 지식과 사고의 영역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중요한 것은 AI와 인간 가운데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일 것입니다.
AI가 빠른 계산과 데이터 처리, 반복 작업을 담당한다면 인간은 창의성이나 감성, 전략적 사고와 같이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297쪽에 이르면 저자는 같은 도구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도구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결국 그 도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 『AI 교양 수업』, 297쪽
이 대목에서 AI를 사용하며 여러 번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똑같은 챗GPT를 열어 놓고도 누군가는 몇 줄의 평범한 답을 얻고, 누군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까지 파고듭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프롬프트를 능숙하게 작성하는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좋은 답을 얻으려면 그보다 먼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루는 속도만 놓고 보면 젊은 사람이 확실히 빠릅니다. 새로운 기능이 나오면 금세 익히고, 여러 프로그램을 연결해서 사용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반면 나이가 들면 처음 보는 화면에서 버튼 하나를 누르는 데도 한 번 더 살피게 됩니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이런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AI를 계속 사용하다 보니 도구를 빨리 다루는 능력과 그 도구에서 깊이 있는 답을 끌어내는 능력은 반드시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AI가 내놓은 답 가운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현실과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려면 질문하는 사람 안에 이미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AI가 그럴듯한 문장을 내놓았을 때 “말은 맞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라고 판단할 수도 있어야 하고, 매끈하게 잘 쓴 문장을 보면서도 “사람의 마음이 빠져 있어”라고 밀어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지식을 암묵지라고 합니다. 바카라이나 문서, 데이터처럼 말과 문자로 정리하여 전달할 수 있는 지식이 명시지라면, 암묵지는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 사람의 판단과 감각 속에 축적된 지식입니다. 능숙한 요리사가 국물 한 숟가락을 맛보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차리는 것처럼, 오랜 경력의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오늘은 말을 조금 아껴야겠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설명하라고 하면 몇 마디로 다 옮기기 어렵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중요한 판단을 이끌어 냅니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달력의 숫자만 늘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선택하고 후회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수많은 장면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어떤 경험은 기억에서 희미해지지만 어떤 경험은 판단력이 되고, 어떤 경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남습니다. 젊은 날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물론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일을 오랫동안 반복했다고 해서 모든 경험이 암묵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겪은 일을 돌아보고 왜 그랬는지 생각하고,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되짚어 본 사람에게 경험은 비로소 지혜의 재료가 됩니다. 경험의 양보다 경험을 해석해 온 시간이 중요합니다.
AI 이전에는 지식의 양 자체가 상당한 경쟁력이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읽었는지, 누가 더 오래 공부했는지, 누가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AI가 방대한 정보를 누구에게나 빠르게 제공하면서 지식에 접근하는 문턱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전문가를 찾아가 물어야 했던 내용도 기본적인 것은 AI에게 질문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생각까지 평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바카라을 읽어도 사람마다 붙잡는 대목이 다르고, 같은 풍경을 보고도 떠올리는 기억이 다릅니다. AI가 같은 정보를 건네주더라도 그것을 무엇과 연결하고 어떤 의미를 끌어내는지는 질문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글쓰기를 생각하면 더욱 분명합니다. AI에게 ‘외로움에 관한 글을 써 달라’고 하면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외로움을 살아본 한 사람에게 외로움은 사전 속 정의가 아닙니다. 혼자 밥을 먹던 어느 저녁의 식탁일 수도 있고, 전화 한 통을 기다리며 자꾸 들여다보던 휴대전화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한동안 치우지 못했던 빈 의자일 수도 있습니다. AI는 외로움에 관한 수많은 문장을 알고 있지만 한 사람이 살아낸 그 저녁까지 가질 수는 없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AI는 몇 초 만에 훌륭한 수업안을 만들어 줍니다. 학습 목표를 세우고 활동 방법을 제안하며 평가 기준까지 정리합니다. 하지만 오늘 교실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수업안을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지난 시간에 발표했다가 친구들의 웃음 때문에 입을 닫아 버린 아이가 있다면 계획표보다 그 아이의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판단에는 사람을 오래 만나며 얻은 감각이 필요합니다.
AI가 명시지를 빠르게 공급할수록 인간에게 축적된 암묵지는 오히려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AI는 정보를 가져다주지만 그 정보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AI가 여러 개의 길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길이 어느 쪽인지는 결국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이 듦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나이 듦을 무조건 불리함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AI라는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능숙하게 밟는다면,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는 여러 길을 지나오며 얻은 길에 대한 감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젊다고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통찰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속도는 배우고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지만, 수십 년을 살아내며 얻은 경험은 단숨에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오래되었다는 것과 낡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오래된 경험을 붙들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면 낡음이 됩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새로운 기술과 연결하면 누구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 됩니다.
오래된 나무가 모두 좋은 나무는 아니지만 오랜 비와 바람을 견디며 만들어 낸 나이테에는 하루아침에 새길 수 없는 무늬가 있습니다. 사람의 경험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테의 개수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으며, 그 시간에서 무엇을 길어 올렸느냐일 것입니다.
『AI 교양 수업』을 펼칠 때는 AI를 얼마나 잘 사용해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어떤 프롬프트를 써야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앞으로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관심은 오히려 사람에게 돌아왔습니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못지않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인간은 이미 불리한 경기를 시작한 셈입니다. 개인이 AI가 가진 정보의 양을 따라잡기는 어렵습니다. 앞으로 그 차이는 더 커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식의 양을 놓고 AI와 겨룰 이유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내놓은 지식을 내가 살아온 시간과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입니다.
이 바카라을 읽고 얻은 생각을 한 문장으로 남긴다면 이것입니다.
AI가 명시지를 평준화할수록, 살아낸 시간에서 나온 암묵지는 더 귀해집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잃어 가는 일만은 아닙니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운 것, 바카라보다 사람에게서 배운 것,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판단을 이끌어 주는 감각이 사람 안에 남습니다.
젊은 날에는 그저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세월이 흐른 뒤 뜻밖의 지혜가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AI는 그 시간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오래전의 경험을 글로 만들고, 흩어져 있던 생각을 연결하고,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AI는 오래 살아온 사람의 경험을 밀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그 경험을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AI 시대에 오래 살아온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젊은 사람의 속도를 무작정 따라잡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되 자신에게 이미 쌓여 있는 것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오늘의 기술과 만나게 해 이전에는 만들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 보는 일입니다.
바카라을 펼칠 때는 ‘AI에게 내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바카라을 덮은 뒤에는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AI와 만나게 하면 무엇을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요.
AI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바카라과 자료를 학습했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삶에 관한 기록을 학습한다고 해도 대신 가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AI가 모든 것을 아는 시대에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자기 몫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거기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얼마나 깊이 자기 것으로 만들었느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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