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척' 부추기는 슬롯, 우리는 정말 똑똑해지고 있을까?
최근 구독자 수십만을 거느린 유명 북튜브 채널들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바카라을 안 읽어도 읽은 척하게 해준다’는 유쾌한 콘셉트의 영상들입니다.
어렵고 두꺼운 고전이나 최신 벽돌바카라을 단 10~20분 만에 명쾌하게 요약해 주니, 영상을 보고 나면 모임에 나가 “그 바카라? 참 명작이지!”라며 슬쩍 대화에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실제로 이런 영상들의 댓글창을 보면 '올해 꼭 읽으려고 사두고 미뤄둔 바카라인데, 영상으로 핵심만 딱 정리해 주니 너무 편하고 좋다'며 안도감을 표현하는 시청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가성비 좋은 공부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문득 서늘한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우리는 정말로 똑똑해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똑똑해졌다는 기분’을 사고 있는 걸까요?
독일의 미디어 학자 크리스토프 엥게만은 그의 신간 <읽기의 위기>에서 오늘날 대중이 바카라을 직접 읽지 않고 유튜버나 AI에게 읽기 숙제를 맡겨버리는 ‘독서의 외주화’ 현상을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글을 찾아 '읽어야' 했지만, 이제는 영상으로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말로 하는 '구술 언어'가 지식을 얻는 데 중심이 된 것이죠.
저자는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주소가 생겨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며, "사실상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은 구글이 아니라 유튜브와 틱톡이다" (p.134)라고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플랫폼 환경에서는 모든 말이 기계가 분석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텍스트가 인간에게 주로 권하는 것은 읽기와 쓰기가 아니라, 말하기와 듣기다. 그리고 이 과정은 언젠가 읽어야 하지만 정작 읽히지 않고 남겨진 텍스트를 끊임없이 참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P.134)
우리는 직접 바카라의 바다에 뛰어드는 대신, 화면 속 매력적인 화자가 꼭꼭 씹어 삼키기 좋게 만들어 준 '지식의 알약'만 받아먹고 있는 셈입니다.
바카라에서는 “이들은 독서를 위임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읽는 독자다. 즉 읽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는 더 이상 읽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읽게 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읽는 독자다.(P.183)”라며, 문자 텍스트가 아닌 구술 강연을 소비하는 대중의 모습을 꼬집습니다. 또한 이를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먼스에 매료되는 '플랫폼 카리스마'라고 지적합니다.
지식을 맛있게 요약해 주는 영상을 보는 것은 참 편리합니다. 바카라을 직접 펼치는 고단함은 피하고, 쉽게 지식을 얻고 싶은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리를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대가가 따릅니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뇌의 근육이 힘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맛집 탐방 영상을 아무리 많이 본들 내 배가 불러오지 않고, 내가 직접 프라이팬을 잡지 않으면 결코 요리 실력이 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독서는 문장 사이를 헤매며 "이건 왜 이렇지?" 의문을 품고 내 삶과 대조해 보는 지난한 '생각의 노동'입니다.
타인이 이미 다 소화시켜 놓은 요약본만 수동적으로 소비하다 보면, 진짜 글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우리 뇌의 문해력 근육은 나날이 가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AI가 바카라을 다 요약해 주고 유튜버가 설명해 주는 시대에, 우리는 왜 여전히 힘들게 바카라을 직접 읽어야 할까요? 저자 크리스토프 엥게만은 아주 도발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만약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잘 읽는다면, 만약 새로운 동영상 강의처럼 다른 누군가가 독서를 대신해 플랫폼 구술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스스로 읽어야 할까?" (P.183)
모두가 글을 읽을 줄 알지만 아무도 스스로 읽지 않는 시대, 역설적으로 ‘스스로 깊이 읽는 능력’은 소수만 누리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마치 중세 시대에 대중은 읽지 못했던 ‘라틴어’를 독점해 권력을 쥐었던 성직자들처럼 말입니다.
AI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힘,
요약본 뒤에 숨겨진 진짜 맥락을 파악하는
통찰력은 결국 활자의 숲을 스스로 걸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점적 역량입니다.
유튜브나 요약 콘텐츠는 지식의 ‘종착지(끝)’가 아니라 ‘출발지(시작)’가 되어야 합니다.
영상을 통해 어떤 바카라에 흥미가 생겼다면, 거길로 끝내지 마세요. 화면을 끄고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가 그 바카라의 첫 페이지를 직접 펼쳐 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요약본이 주는 달콤한 편리함에 취해, 내 사유의 주권을 미디어에 통째로 넘겨주어서는 안 되니까요.
"읽은 척"하는 지식은 잠시 남을 속일 수는 있을지언정, 내 삶을 바꾸는 진짜 지혜가 되지는 못합니다. 진짜 내 것이 되는 지식은 오롯이 홀로 앉아 물성이 있는 종이 바카라을 펼치고 사색할 때만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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