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1년 10개월이 되어간다. 서울 생활이 지루해지면 고향으로, 고향이 지겨워질 때쯤 다시 서울로 오기를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상황이 무섭다.
간혹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곤 한다. 섣불리 펜이 움직이질 않는다. 시간과 돈을 다 배제해 보기로 한다. 두 가지 정도가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지 목표로 세우고 열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의 여름휴가를 맞이해 양평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꼽아보니 올해 처음으로 낯선 곳으로 떠난 날이었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매콤한 낙지볶음을 먹고, 멋진 공간과 풍경을 배경으로 오랜만에 안 찍던 사진도 잔뜩 찍었다. 샌드 커피를 하는 곳에서 초콜릿 향이 물씬 나는 훌륭한 커피도 마셨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자극으로 즐거웠다.
카페에 앉아 친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난 요즘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
"아 진짜? 나는 하고 싶은 거 엄청 많은데"
"뭐 하고 싶은데? 궁금하다."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방송 댄스도 배우고 싶어. 9월에 배워보려고!"
“좋겠다. 요즘 일부러 적어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
"네가 요즘 아무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회사 다닐 때는 힘드니까 주말에 어떻게든 재밌는 걸 하려고 하잖아."
"그런 것 같기도 해. 오히려 그때는 시간이 없었는데 평일이 너무 싫고 힘드니까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당일치기 여행을 가려고 했거든. 강의 듣고 모임하고, 퇴근하고 밤늦게까지 글 쓰고 주말에 나가서 합평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좋았어. 아! 싫은 게 없어서 좋아하는 게 없는 건가?"
나는 뭔가 깨달은 듯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주식에도 급등이 있으면 급락이 있다. 나는 지금 지루할 만큼 평화로운, 아니 이젠 지루함에 더 무게가 실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뭘 대단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원데이 클래스라도 가볍게 들어보면 어때? 그러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도 있잖아."
나는 항상 뭔가를 결정하면 그것에 온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 친구 말대로 원데이 클래스라도 들어보면 그것을 마중물 삼아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대화에서 얻은 깨달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8월이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변함없는 내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땐, '나 자신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다. 삶을 바카라임감 있게 살고 있나? 전혀.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고 숙제를 맘껏 미뤄놓고 놀고 있는 초딩과 다를 바가 없다.
싫은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존재한다. 이젠 싫은 것을 해야 할 때다. 모른 체 덮어놓았던 그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