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 Diem — 바우처와 낯선 지폐

영수증을 모으는 손끝에서 살림하는 나의 짠내가 난다..

by남발

코트 위에서 판정하는 일이 늘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지갑 속 영수증들과 엑셀파일 속 숫자를 맞추는 게 오히려 더 힘들 때도 있다.


경기장 불이 꺼지고 나면 나는 관중들이 빠져나간 어두운 복도를 지나 토너먼트 오피스 구석으로 간다. 문 앞에는 작은 팻말 하나가 붙어 있는데 보통 'Finance Desk' 혹은 그냥 'Cashier'라고 되었다.

문을 열면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낡은 서류 냄새, 그리고 낯선 나라 지폐 특유의 퀴퀴한 잉크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보통 거기에 있는 바카라임자들은 바쁘다. 심판들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상금도 여기서 담당하기 때문에 매번 매치가 끝나고 짐을 싸는 선수들도 계속 드나드는 곳이다. 그래서 바카라상 너머에 앉은 회계 담당자는 방문한 사람과의 인사보다는 그저 내 목에 걸린 AD 카드의 바코드, 그리고 본인들의 서류에 있는 동일한 이름 옆의 날짜들만 확인한다.
"오늘까지 닷새 치 정산 맞지?"
바카라상 위 서류에 볼펜으로 사인을 휘갈기면, 그는 서랍을 열고 묵직한 종이봉투 하나를 툭 던져준다.





대회 본부 회계 데스크에서 건네받은 흰 봉투. 그 안에는 영광 대신 일주일간 낯선 도시를 버텨낸 노동의 대가가 들어 있다.


테니스 국제심판은 협회에서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온라인 게임인이 아니다. 겉으로는 전 세계를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니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본질은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사는 '독립 계약자', 그러니까 철저한 프리랜서다. 큰 대회든 작은 챌린저 대회든 우리에게 주는 건 보장된 퇴직금이 아니라 하루 단위로 떨어지는 일당, 바로 '퍼 디엠(Per Diem)'이다. (실제 이 Per Diem은 현장에서 하루 식대라고 보면 되고, 심판비는 'Officiating Fee'라고 한다.)


봉투를 열어 지폐를 꺼낸다. 위안, 엔, 유로, 달러. 국경을 넘을 때마다 손바닥에 쥐어지는 종이돈의 색깔과 그려진 얼굴은 매번 바뀌지만, 몇 장 빠진 건 없는지, 환전할 때 떼일 수수료는 얼마인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셈을 굴려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매번 그냥 받는다. 별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확인절차 없이 받아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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