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pension — 코트에 떨어지는 빗방울

"경기가 중단되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의 무게

by남발

테니스는 야외운동이다. 물론 실내코트도 있고 실제 프로경기도 실내에서 할 때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대체방법의 제일 마지막 선택지이고 그 대체의 이유가 바로 '비'다.


체어 위에 앉아 있으면 쉽게 하늘의 낌새를 알 수 있는데, 바람의 냄새가 축축해지고 이내 빗방울이 잉크처럼 톡톡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선수들의 신발 미끄러짐의 빈도가 증가하고 내 신경은 베이스라인 근처로 곤두선다.

하지만 선수가 멈칫하며 나를 쳐다보기 전까지 내가 먼저 떨어지는 빗방울을 주시한다거나 비가 내리는지 확인하는 손짓이나 액션을 취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부터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라켓을 휘두르는 선수의 발목이 꺾이는 순간, 그건 나의 직무유기로 이어질 게 뻔하기에 포인트가 끝나자마자 나는 체어에서 내려온다.


네트를 지나 베이스라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내 신발 밑창으로 흰색 페인트 라인을 거칠게 문질러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라인을 쓸어본다. 아크릴 페인트로 칠해진 흰색라인들은 물기 한 방울만 닿아도 빙판처럼 미끄러워진다.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엄지로 송신 버튼을 누른다. 플레이를 잠시 중단하고 선수들을 코트 밖에서 대기시키겠다고. 그리고는 다시 체어에 재빠르게 올라가 마이크를 켜고 안내한다.


"Ladies and gentlemen, play is suspended"


그때부터 경기는 선수가 아니라 비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지붕이 있는 센터코트들은 닫히는데 소요되는 시간동안만 경기가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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