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는 신분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걷는 철저히 계산된 '동선'
테니스 경기장은 코트보다 먼저 사람을 분류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 아이디카드라 불리는 것을 경기장을 공짜로 드나들 수 있는 프리패스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목에 거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인 이것은 보통 'Accreditation'이라는 용어로 불려지는데, 이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명확히 규정하는 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선 긋기는 경기장 정문이 아니라,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2012년 런던과 2024년 파리, 이 2번의 올림픽을 포함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메가 이벤트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일반 탑승객과 철저히 격리된 길을 걷는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입국 심사는 면제되고, 사전에 세팅된 특별 수속을 통해 이 플라스틱 목걸이를 수령하는 즉시 입국수속이 종료된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요원을 현장에 투입하기 위한, 선택받은 자들만의 특권적이고 건조한 이동이다.
공항과 기차역에서부터 일반인의 시선에 띄지 않게 작동하는 이 전용 통로는 대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필수 하드웨어이기도 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국가와 대회가 주도하는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자리한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서 열린 싱가포르 대회에서는 패스와 함께 하얀색 GPS 장치를 수령해야 했다. 동선의 통제는 곧 권한의 크기이며, 동시에 완벽한 구속이다. 대회장 밖의 이동까지 정부 통제하에 묶이는 시스템 속에서, 패스와 GPS는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증명하는 전자 족쇄이자 출입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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