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지

나를 생각해 주세요

by내마음정화
팬지 꽃

작고 여린 꽃잎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팬지라는 이름은

‘생각’을 뜻하는 프랑스어

‘팡세(pensé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꽃잎의 무늬가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입니다.


처음 이 꽃말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나를 생각해 주세요.


여러분은 살면서

자기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오랫동안

제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기분을 헤아리고,


제가 한 말 때문에

상대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생각했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내가 해줄까?”

“내가 도와줄까?”


이런 말을

참 많이 하며 살았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했고,


거절해야 할 때도

쉽게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오래 들여다보면서


정작 제 마음이 어떤지는

잘 묻지 않았습니다.


내가 조금 불편한 것은

참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유를 알 수 없이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느라

정작 제 마음을 돌볼 힘은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한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번 배려해 주는 네가 너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너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 역시

저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고,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자신의 마음까지 내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게는 해주지 못했던 말을

상대에게 건네면서


결국 그 말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뒤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많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서운해할까 봐

제가 원하는 것을 미루기도 했고,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해

제 마음을 뒤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오래 들여다보면서


정작 제가 힘든 날에는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그냥 지나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참 다정했는데


저 자신에게는

그만큼 다정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 사실조차 잘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제게는 너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배려하는 마음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일도

좋아합니다.


그 마음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순서를

조금 바꾸어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제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싫은지.


지금 힘든지.


잠시 쉬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그 질문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사람은


결국 저였습니다.

나에게로 향하는 마음

나를 먼저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저를 아끼고

제 마음을 돌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마음도

조금 더 편안해졌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거절할 수도 있는 것.


저에게는 그런 것들도

저를 생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아껴주고,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그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만

기대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제가 제게

해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팬지의 꽃말을 조금 다르게 읽습니다.

나를 생각해 주세요.


누군가에게

나를 생각해 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제가 저 자신에게

건네는 말.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 마음을 먼저 바라봐달라고.


다른 사람의 속도보다

나의 속도에 귀 기울여달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정작 나를 잊지는 말아 달라고.


팬지는
제게 조금 특별한 꽃입니다.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는

꽃말을 알고 난 뒤

오래 마음에 남는 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꽃을 바라보며

제 마음을 글로 꺼내기 시작했을 때


제가 처음으로 글에 담았던 꽃은

팬지였습니다.


‘내 마음정화’라는 이름으로


팬지의 꽃말을 빌려

제 마음을 처음 적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꽃 한 송이의 의미를

적기 시작한 일이


언젠가 제가 지나온 삶을

글로 들여다보는 일까지

이어질 줄은.


어쩌면 저는 그때부터


꽃을 이야기하면서

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팬지.

나를 생각해 주세요.

나를 생각해 주세요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면


이제는 제가 저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나는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걷고 싶은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기 전에

제 마음에도 한번 묻겠습니다.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듯

제 마음도 오래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건네왔던 다정함을

이제는 저에게도

조금씩 건네보려고 합니다.


팬지.

나를 생각해 주세요.


그것은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는 말이 아니라,


제가 저를 잊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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