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프랑스로 향하다

by내마음정화
꿈을 이룬 순간

어릴 적 제 꿈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정화야, 넌 꿈이 뭐니?”


그럴 때면 저는

구체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홍익대학교에 가서 패션을 공부하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앙드레 김 선생님처럼


프랑스에서 무대를 열고 싶다고.


어린 제게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었지만


제가 알고 좋아하던 나라는

프랑스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제가 꽃을 만나면서


그 꿈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패션을 꿈꾸며

가보고 싶었던 나라가

이제는 꽃을 배우기 위해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적어둔 꿈

프랑스에서 직접 꽃을 배우고,

그곳에서 수료증을 받아오는 것.


꽃으로 제 일을 시작한 뒤

어느새 그것은


제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과

실제로 떠나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독립한 뒤 약 1년 반 동안

저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새벽이면 꽃시장으로 향했고,


매장을 운영하고,

손님을 만나고,


더 잘하고 싶어서

또 꽃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밤늦게까지 매장에 남아

작업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문을 닫을 시간이 지나도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잠들기 전에는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일을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일로 버티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꽃을 좋아했기에

그렇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몸이 지칠 만큼 움직여야

겨우 잠들 수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일했습니다.


저를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늘 고마웠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도


누군가 제 꽃을 찾아

매장으로 와준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웠던 것 같습니다.


좋은 꽃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담아드리고 싶었고,


조금 더 예쁘게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손님을 맞는 공간도

늘 깨끗하게 해 두었습니다.


꽃을 정리하고,

매장을 청소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났습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지만


정작 저 자신을 돌보는 일은

계속 뒤로 미루고 있었습니다.


밥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한창 저 자신을 꾸미고

돌봐도 좋을 나이였지만


제게 쓰는 시간은

늘 가장 마지막이었습니다.


일이 먼저였고,

손님이 먼저였고,

꽃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먼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계속된 작업으로

손목이 버티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복해서 꽃을 만지던 손목은

눈에 띄게 상했고,


한쪽이 움푹 들어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춰야 했던 시간

병원에서는

계속 이렇게 무리하면


앞으로 꽃을 오래 만지는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꽃을 못 하게 되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지.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꿈을 오래 이어가야 할

제 몸은 돌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쉬는 법도,

제대로 먹는 것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뒤로 미룬 채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프랑스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었지만

막상 기회가 찾아오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도시에서 알게 된 언니와


연락을 나누다가

제 고민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습니다.


“정화야, 지금 아니면 못 가.

나중에는 더 바빠질 거야.

기회가 있을 때

세상을 많이 보고 와.”


해외를 자주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보았던 언니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맞았습니다.


‘언젠가’라는 시간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제가 직접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살아보자.


잠시 일을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고.


제가 보고 싶었던 세상을

직접 보고 오자고.


열심히 살아온 저에게도

그 정도의 시간은 주어도 된다고.


엄마도 제 선택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다녀와.”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면 충분했습니다.


제가 모은 돈에

엄마가 보태준 마음까지 더해


프랑스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두었던

버킷리스트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의 여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게는


오랫동안 열심히 살아온

저 자신에게 건네는 선물이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을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보는 일이었습니다.

꿈을 향해 떠나던 날

2022년 여름.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안고

저는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출국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조심해.”

였습니다.


낯선 나라에 간다는 걱정에


도난 방지 스트랩부터

가방 자물쇠까지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프랑스에 도착하니


두려움보다 먼저

다른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왔구나.


어릴 때부터

마음속으로만 그려왔던 나라에


제가 실제로 서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꽃 수업을 이끌어주실


벤자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낯선 환경이라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곁에 한국 분인 지은님이 계셔서
소통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두 분이 따뜻하게 맞아주신 덕분에

마음은 금세 편안해졌습니다.


그 인연은

한 번의 수업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끔 서로의 안부를 나누었고,


선생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는

다시 만나기도 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길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소중한 인연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꽃을 배우기 위해


남프랑스 아비뇽으로 향했습니다.


낮은 집과

푸른 나무,


따뜻한 햇살,


오래된 골목과 작은 시장.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간.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남프랑스에서 만난 따뜻함」

무엇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함이 좋았습니다.


낮에는 꽃을 배우고,


정원이 보이는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천천히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렸습니다.


한국에서의 저는

늘 다음 일을 생각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끝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늘이 끝나기 전에

얼마나 더 해낼 수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식사를 할 때는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서로를 바라보고,


햇살이 좋은 순간에는

그 시간을 그대로 누렸습니다.


저에게는

그 평범한 모습이 오히려 새로웠습니다.


꽃을 배우러 떠났지만


정작 제가 크게 배운 것은

꽃을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공간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자연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아비뇽에서 함께한 시간

라벤더가 펼쳐진 풍경과


오래된 골목,

작은 시장을 걸으며


좋은 공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것으로 가득 채워진 곳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살아오며

조금씩 흔적이 쌓인 공간에


제가 좋아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프랑스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에는

파리로 향했습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도시였고,


직접 보고 싶었던

에펠탑도 보았습니다.

오래 꿈꾸던 도시 앞에서

오래된 건축물과

골목마다 스며 있는 예술,


도시 곳곳에

겹겹이 쌓인 시간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상상했던 파리를

제 눈으로 직접 만났습니다.

파리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설레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제 마음에 더 오래 남은 곳은


남프랑스였습니다.


아비뇽의 따뜻한 햇살.


정원이 있는 집.


함께 둘러앉았던 식탁.


여유롭게 흘러가던 일상.


어린 시절 제가 꿈꾸었던 프랑스는

화려한 파리의 모습에 가까웠지만,


정작 어른이 된 제가

마음에 담아 온 프랑스는


남프랑스의 평범하고

느린 하루였습니다.


그 평온한 풍경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제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에 가기 전의 저는

예쁜 꽃과

아름다운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뒤에는


왜 아름다운지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 공간이 편안한지.


왜 어떤 풍경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지.


그 안에는

어떤 사람의 삶이 있었고,


어떤 시간과 이야기가

쌓여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수료증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넓어진 시야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열하게 살아오기만 했던 제게

잠시 멈춰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준 시간이었습니다.

풍경을 바라보고,


햇살을 느끼고,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안


오랫동안 지쳐 있던 제 마음도
조금은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훗날


제가 꽃을 바라보고,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순간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처음 정해놓은 목표에

그대로 도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것을 위해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딛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나고,


조금 더 넓어진 마음으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것 역시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프랑스 무대를 꿈꾸던 아이는


결국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프랑스에 가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꽃을 배우는 사람이 되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꿈은 처음 상상했던 모습과

조금 달라졌지만


그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곳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꽃을 배우던 시간

꿈은 때로 모습을 바꾸면서도

계속 우리를 같은 방향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그리고 프랑스는 제게

한 가지를 더 가르쳐주었습니다.


‘언젠가’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꿈에 닿을 수 없다는 것.


때로는 잠시 멈추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두려워도 직접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나아갈 때

비로소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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