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어나는 마음
겹겹이 피어난 꽃잎과
짙은 색감이 아름다운 꽃입니다.
섬세하면서도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배신, 속절없는 사랑’입니다.
처음 그 꽃말을 알았을 때
참 마음 아픈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아팠고,
믿었기 때문에
더 크게 흔들렸던 마음.
저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온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사람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누군가를 따르고,
믿고,
마음을 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제가 가진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믿는 일이
두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으로 인해 아팠고,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무서워졌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제가 살아온 곳에서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선 속에 놓이는 일이었습니다.
왜 나를 그렇게 바라볼까.
왜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이야기할까.
그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한때 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들마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였습니다.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나준 사람도 있었고,
어느 순간
멀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관계가 달라지는 이유를 알지 못해
누군가 멀어질 때마다
제 안에서 이유를 찾았습니다.
어떤 위로도
제 마음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는 말도
제게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그저
그곳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역을 옮긴다고 해서
마음까지 두고 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한 뒤에도
제가 떠나온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만
저를 잊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없는 곳에서
더 이상 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저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지나간 일을 설명하지 않고
제 하루를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제가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삶을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바쁘게 살았습니다.
일을 했습니다.
정말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남들이 쉴 때도 일했고,
남들이 일할 때도 일했습니다.
집.
매장.
꽃시장.
그리고 다시 집.
꽃과 식물을 돌보고
손님을 만나며
하루를 빈틈없이 채웠습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일하고,
눈을 뜨면
다시 움직였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일을 사랑했던 만큼
일 속에 마음을
숨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몇 번의 봄과 겨울을
지나왔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이상하게도
예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말들이
뒤늦게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누군가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던 위로.
말없이 밥을 챙겨주었던 마음.
제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저 옆에 있어주었던 사람.
괜찮아질 거라고
기다려주었던 사람들.
그때는
그 마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상처가 너무 커서
제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저를 믿어준 사람들.
제가 다시 살아갈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준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만나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금의 저를 그대로 바라봐준 사람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람 때문에 아팠던 시간에도
저를 다시 살아가게 한 것 역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시간을 지나며
저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고,
떠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멀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람도 있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
새롭게 제 삶에 들어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인연을 지나며
저는 관계에도
저마다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떠나는 사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왜 떠났는지,
조금 더 잘했다면
달라졌을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모든 사람이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한 시절을 함께했다고 해서
평생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사람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고,
관계에도
각자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다시 온다는 말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면
그 시간을 보내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남아주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저 자신까지 그렇게 오래
아파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떠났다는 이유로
제 삶까지
멈출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에는
배신.
속절없는 사랑.
두 개의 아픈 말이 담겨 있습니다.
한때는 저도
그 두 단어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누가 나를 아프게 했는지,
누가 떠났는지,
왜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났는지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른 것들이 보였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남아준 사람들이 보였고,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위로가
뒤늦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과
사람을 믿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나를 잃어버리는 것 역시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시절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무 오래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네 곁을 떠나는 사람이
네 삶의 모든 사람은 아니라고.
지금은 들리지 않는 위로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들리기도 하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한참 뒤에야 보이기도 한다고.
그때의 저는 몰랐지만
지금의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사람에게 상처받아
사람을 피해 떠났던 제가
결국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처가 저를 단단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지나면서도
다시 살아보려고 했던 시간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네모네.
배신, 속절없는 사랑.
한때는 그 두 단어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 꽃말 뒤에
저만의 이야기를
하나 더 이어봅니다.
떠난 사람보다
끝까지 제 곁에 남아준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
떠난 인연은 보내주고,
남아준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떠남 때문에
제 삶까지 멈추지 않는 것.
배신도,
속절없는 사랑도
제 삶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이는 마음이 있었고,
뒤늦게 들리는
위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네모네를 바라볼 때면
꽃말에는 없는
저만의 마음 하나를 떠올립니다.
다시 피어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