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고 없는 도시로 떠났습니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엄마는 제가 독립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못하셨습니다.
그건 저를 붙잡으려는 마음이라기보다
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부터
엄마는 늘 저를 곁에 두고 싶어 하셨습니다.
혹시 제가 다시 무너지지는 않을지,
혼자 있는 동안
또 힘들어지지는 않을지.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으로
제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좀 살려줘.
나 여기 있으면 숨이 막혀.”
그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제 선택을 응원해준
주변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가까운 이모들은
제가 조금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엄마를 설득해주었습니다.
돈보다 딸이
다시 살아가는 일이 먼저이지 않겠느냐고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엄마는
결국 저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제 독립을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 선택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날 엄마는
저를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제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저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 동기 한 명.
그 친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저.
그곳에서는
‘바른꽃정화’가 아닌
‘바른꽃’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다시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다시 걸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가 떠나온 곳에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 속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를 모르는 곳에서
지나간 일을 설명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낯섦이 저를 편안하게 했습니다.
아무도 제 과거를 모르고,
아무도 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곳.
그곳에서 저는 비로소
지나간 일을 설명하는 대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꿈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새벽이면
꽃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이전보다 꽃시장이 가까워진 것도
저는 좋았습니다.
더 자주 시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때의 저에게는
꽤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꽃이 들어왔는지,
어떤 식물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지,
어떤 꽃을 건네야
받는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을지를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꽃을 생각했고,
눈을 뜨면
다시 꽃을 만나러 갔습니다.
꽃을 배우고,
식물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면서
저는 조금씩
제 하루를 되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사람은 어려웠고,
세상은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을 만나야 했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씩 살아내다 보니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독립은
단순히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를 잊기 위한
선택도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한번 붙잡아보기 위한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살아가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하는 일이었습니다.
확신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겠다는 마음만은
분명했습니다.
어쩌면 독립은
혼자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믿기 시작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시작한 공간이었습니다.
다시 살아보자.
다시 해보자.
그 마음 하나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부모님이
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아빠는 새벽이면
매장 앞을 정리해주셨고,
엄마는 점심시간이면
밥을 챙겨주시면서
꽃일을 거들어주셨습니다.
퇴근 후에는
매장 청소를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바쁜 날이면
이모들까지 와서
꽃을 손질해주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많은 손길 덕분에
제가 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을.
독립한 뒤에는
대부분의 일이 제 몫이 되었습니다.
꽃을 사고,
식물을 관리하고,
분갈이를 하고,
청소하고,
주문을 받고,
꽃을 만들고 포장하고,
제가 한 작업을
기록하는 일까지.
꽃과 식물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하루라도 마음을 놓고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매일 살피고,
다듬고,
상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하루의 많은 일을
혼자 바카라임져야 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제 곁에서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멀리 지내면서도
시간이 될 때면 찾아와
말없이 제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친구들도 바쁜 날이면
잠시 들러 손을 보태주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며
저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것과
혼자의 힘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라는 것을.
그 시절의 저는
정말 일밖에 몰랐습니다.
눈을 뜨면 일을 했고,
잠들기 전까지도
꽃 생각뿐이었습니다.
친구를 만나더라도
대부분 매장에서 만났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때의 저는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그 작은 공간은
생각보다 많은 인연을
제게 데려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조금씩 멀리서도
저를 찾아와주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손님으로 만났던 분들이
어느새 언니가 되었고,
따뜻한 밥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힘든 날이면 먼저
안부를 물어봐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분들을 단순히 손님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제 삶의 한 시절을
함께 지나온
소중한 인연들이었습니다.
매장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방송 출연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그때의 저는
여전히 사람이 두려웠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나오는 것이 무서워
작가님께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려도 되는지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긴장을 가라앉히려고
청심환까지 세 개나 먹고
촬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에게는
그것도 하나의 용기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주 조금씩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꽃이 들어오면
조금이라도 더 담아드리고 싶었고,
포장 하나에도
제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수익보다
꽃을 받는 사람의 기쁨을
먼저 생각했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공부했고,
더 배우려고 했고,
더 좋은 꽃을
찾아다녔습니다.
아마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때 저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았으니
이제는 사람을 믿지 못하며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저는 다시 사람을 만났습니다.
손님으로 만났다가
어느새 언니가 된 사람들.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제가 만든 꽃을 좋아해주며
제 일을 응원해준 사람들.
엄마는 제게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에게 치유받을 거야.”
그때는 그 말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조금씩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혼자 살아보겠다고 떠났지만
혼자의 힘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낯선 도시로 떠났던 제가
그곳에서는 다시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 찾아간 도시에서
저는 꽃을 다시 시작했고,
사람을 다시 만났고,
제 삶을 다시
만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살아보기 위해 찾아간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제 삶을 다시 만들어가는 동안
어느새 그곳은
제가 떠나온 곳 다음으로
오래 마음을 붙이고 살아간
두 번째 고향이 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