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을 닮은 꽃
카네이션의 꽃말은
‘모정,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깊고 오래 남는 말이 있다면
제게는 아마
엄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보았습니다.
어느 해 가정의 달,
손님들에게 건넬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다가
문득 오래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사람을 피하고,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제가 그렇게 좋아했던 꽃과
제가 만든 공간에서조차
멀어져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엄마는
제가 비워둔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돌볼 수 없었던 꽃과 식물을 돌보고,
제가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공간을
말없이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늦은 밤,
오랜만에 매장으로 돌아온 저를 보며
엄마는 평소처럼 웃었습니다.
“우리 딸 왔네.”
그날 엄마가 입고 있던
원피스의 작은 구멍을 보며
저는 처음으로
엄마의 시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딸에게는
무엇 하나 아끼지 않던 사람.
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의 것은 뒤로 미루면서도
제게는 어떻게든
좋은 것을 해주려고 했던 사람.
그런 엄마가
자신의 것은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제가 비워둔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건 단순히
매장을 돌봐준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쓰러져 있던 시간을
대신 살아준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을 때
제 자리를 지켜준 사람.
제가 꽃을 돌볼 수 없을 때
대신 꽃을 돌봐준 사람.
제가 저 자신을 포기하려 했을 때에도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엄마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마음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
제 하루를 다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제게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고 있느냐고
재촉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밥을 먹는지,
잠은 자는지 묻고,
제가 없는 곳에서도
제 안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엄마가 제게 보여준
사랑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붙잡는 대신 기다리는 것.
말하는 대신 지켜주는 것.
한 사람이 다시 일어날 때까지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않는 것.
저는 오랫동안
사랑은 마음을 많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고,
상대에게 잘해주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를 통해
다른 사랑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간에도
곁을 떠나지 않는 마음.
상대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마음.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 딸 왔네.”
라고 말해주는 마음.
어느 해 가정의 달,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다가
저는 그 마음을
뒤늦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카네이션.
모정.
변함없는 사랑.
꽃을 만지고 있으니
그날의 엄마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도
말없이 저를 기다리던 사람.
제가 어디에 있든
밥은 먹는지,
잠은 자는지
제 안부부터 궁금해하던 사람.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는
제게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사람.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큰 목소리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랑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한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의 저는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는 미안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도
제 자리를 지켜준 사람이 엄마였는데,
저는 다시
엄마의 곁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떠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다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잠시 벗어나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제 하루를 하나씩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준비를 마친 뒤에야
부모님께 제 결정을 알렸습니다.
떠나는 것은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살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살기 위해,
저는 떠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