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을 닫게 된 날

by내마음정화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제 이름을 건 공간이 생겼고,


저를 찾아주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삶은 때때로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제 삶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하나를 받아들일 틈도 없이

또 다른 일이 이어졌고,


믿고 있던 것들도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과의 관계도

그 시간을 지나며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때 있었던 일을

자세히 꺼내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때의 저는

제가 살아오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무서웠고,


세상도 무서웠습니다.


누군가의 시선도

두려웠습니다.


어떤 위로도

제 마음 깊은 곳까지

닿지 않았습니다.


매장 문을 다시 여는 일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전화가 울리는 것도,


메시지가 오는 것도

싫었습니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지냈습니다.


아는 동생에게 부탁해

그 집에 머물며


사람을 피하고,

연락을 피하고,


제가 살던 일상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엄마는 제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만큼이나,

어쩌면 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병원을 다니며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엄마는 자신은 괜찮다며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제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길을

조금 더 일찍 응원해주었어야 했다고.


엄마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고.


엄마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제가 겪은 아픔까지

자신의 몫인 것처럼

안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모들과 함께

수없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딸이 밥을 먹기를,


잠을 자기를,


다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그때의 저는

제 아픔밖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가장 큰 위로가 필요했던 사람은

어쩌면 엄마였을지도 모른다고.


저는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는 제가 없는 동안에도

저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머물던 집의 동생에게

조용히 연락하고 계셨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자는지.


오늘은 좀 괜찮은지.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제 안부를 물었습니다.


저는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에도 엄마는

말없이 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매장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프로포즈 꽃다발을

꼭 제 손으로 받고 싶다는

한 손님의 부탁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

여전히 두려웠던 저는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동생과 함께 늦은 밤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도착한 매장.


그런데 문 앞에 서자

안에서 환하게

불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엄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마치

제가 어제도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딸 왔네.”


그리고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제 시선이 엄마가 입고 있던

원피스에 머물렀습니다.


늘 보았던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겨드랑이 한쪽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크지 않은 구멍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딸에게는

무엇 하나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옷 한 벌은

쉽게 새로 사 입지 못하면서


엄마는 퇴근 후마다

제가 없는 매장에

들르고 있었습니다.


꽃을 살피고,


식물에 물을 주고,


먼지를 닦고,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습니다.


제가 돌보지 못하고 있던 공간을

엄마가 대신 돌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놓은 공간이

완전히 멈춰버리지 않도록


아무 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라지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너무 분명했습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


그동안 저는

제가 얼마나 힘든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제가 포기하려 했던 삶을

누군가는 간절하게

붙잡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밥 한 끼를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낡은 원피스와


제가 없는 동안에도

환하게 켜져 있던

매장의 불빛을 바라보며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다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뜬다고 해서

두려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매장 문을 열었을 때도

저는 많이 떨었습니다.


엄마의 지인인 이모의 따님이

제 곁에 함께 있어주었지만,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누군가 저를 두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가는 일은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곳에서 계속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저는

매장의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이 지역을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살고 싶어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문을 열던 날에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을 닫던 날에는


그저 제가 다시

평범한 하루를 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때는

문을 닫는 것이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키지 못한 것 같았고,


제가 시작한 꿈을

제 손으로 포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때의 저는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잠시 내려놓은 것이었습니다.


문 하나를 닫는다고 해서

제가 좋아했던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꽃을 좋아했던 마음도,


제 일을 사랑했던 마음도,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도


아주 깊은 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다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제 자리를 대신

지켜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마였습니다.


그때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다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제 하루를 다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요.


시간이 흐른 뒤

꽃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느 날 한 송이 꽃 앞에서

그 시절의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그 꽃은

카네이션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지금도

가정의 달이 다가오고


카네이션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 시절의 엄마를 떠올립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


제가 제 자리조차

지킬 수 없었던 순간에도


말없이 제 자리를

대신 지켜주었던 사람.


제가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려주었던 사람.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이


제게는 카네이션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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