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피

나를 기억해 주세요

by내마음정화

가느다란 줄기 끝에

여린 꽃잎이 레이스처럼 달려 있는

청순한 꽃입니다.


코를 가까이 대면

은은한 향기가 납니다.


스위트피의 꽃말은

‘나를 기억해 주세요’입니다.

스위트피

이 꽃을 생각하면

저는 오래전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

가장 많이 웃었고,

가장 많이 순수했던 시절에

서로의 힘든 시간까지

함께 지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제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마음을 알려준 사람이었고,

어린 시절의 많은 추억 속에

함께 남아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시절,

제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제 마음을 참 많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고,

제가 가진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좋아하는 사람과

서로의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꿈꾸던 미래였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저는

미래를 생각할 때에도

그 중심에 저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제 삶의 중심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꽃을 배우고,

제 이름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해보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늘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던 시선이

조금씩 제게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찾은
제 삶이 좋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 일하고,

제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오랫동안 제 곁에 있던 사람의 마음을

예전만큼 세심하게

바라보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꼭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많이 서툴렀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관계였지만

저는 제 선택을 먼저 내렸고,


그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볼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사람과의 추억이 남아 있던

공간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스위트피

그곳에서

꽃 한 송이를 보았습니다.

스위트피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그 사람에게 선물했던 꽃이었습니다.

그 꽃은

테이블 위에 살포시 놓여 있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이 울었습니다.

왜 그 꽃을 남겨두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두고 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날의 제게는

그곳에 남겨진 스위트피 한 송이가

말보다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함께했던 시간,

좋아했던 마음,

서로에게 건넸던 것들,

그리고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까지.

그 모든 것이

꽃 한 송이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위트피.

나를 기억해 주세요.

그 꽃말을 알고 있었기에

더 많이 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우리는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매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사람이 저희 집을 찾아가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헤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빠는

제게 전화를 걸어


그 사람이 집에 왔다며

언제 들어오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걸까.

고맙기보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고,

엄마도 우리가 다시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함께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답게

그는 자연스럽게 저를 챙겼습니다.

익숙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었고,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잠시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잘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 무렵의 저는

예전의 저와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제 삶을 살아보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하면서

제가 주었던 마음과

정작 제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도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도 소중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제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제게는 소중해져 있었습니다.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그 무렵

제 삶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일상도,


제가 만들어가던 공간도,

제 마음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들었던 시간을

저는 한동안 그 사람과 함께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 시절의 아픈 기억까지

함께 따라오곤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저는 그 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삶에 일어났던 모든 일이

한 사람의 탓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저 역시 많이 어렸습니다.

제가 아플 때에는

제 아픔밖에 바라보지 못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서

사랑하는 방법까지

성숙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사람을 생각하면

원망보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남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의 우리는

서툴렀지만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하는 것과

돌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어떤 인연은 끝나도

그 안에 있었던 진심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웃었던 날은

그대로 웃었던 날이고,

사랑했던 마음도

그 시절에는 분명 진심이었습니다.

스위트피의 향기처럼

어떤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느 날 문득

마음속으로 다시 스며듭니다.

이제는 그런 기억을

애써 밀어내지 않습니다.

좋았던 것은 좋았던 것으로,

아팠던 것은 아팠던 것으로,

그리고 제가 부족했던 부분은

제 몫으로 바라봅니다.

스위트피.

나를 기억해 주세요.

예전에는 이 꽃말이

그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기억해 달라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나를,

누군가를 제 삶보다

먼저 생각하기도 했던 나를,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려 했던 나를,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놓치기도 했던 나를,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때의 제 몫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 나를.

제가 기억하려고 합니다.


스위트피.

나를 기억해 주세요.

그 꽃 한 송이는 그렇게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끝나갈 무렵,


제 삶에는

또 다른 흔들림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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