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빛으로 피어난 이름
개나리는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기도 전에
피어나는 꽃입니다.
아직 공기에는 찬 기운이 남아 있는데
가장 먼저 노란빛을 내어놓습니다.
봄이 정말 올지 알 수 없는 계절에
먼저 피어나
봄을 알려주는 꽃.
저는 개나리를 보면
한 사람이 제게 건넸던
희망의 말을 떠올립니다.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입니다.
그 시절의 저는
좋아하는 것은 많았지만
그것을 제 삶으로 선택할 용기는
부족했습니다.
제 꿈을 한참 동안 들어준 뒤
그분은 제게 말했습니다.
“넌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때의 저는
그 말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저조차 제 가능성을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은
제가 보지 못했던 제 모습을
조금 먼저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너는 스케치를 해.”
“나는 그 스케치에
색을 입힐 수 있는 도구를 줄게.”
“네 마음 가는 대로 색을 칠해봐.
너만의 작품을 만들면 돼.”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 제 인생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겠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색을 칠해야 하는지
정해주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결국 저였습니다.
다만 제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를 건네주겠다는 마음.
그 말은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습 하나를
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넌 꽃과 식물을 볼 때
눈빛이 달라져.”
“그 똘망한 눈을 보니까 알겠어.
이건 너한테 꼭 맞는 일이야.”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좋아하고 있었나.
박쥐란을 처음 좋아하게 된 뒤
조금씩 식물의 이름이 궁금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예쁜 공간보다 그 안에 놓인 식물을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전에는 그저
예쁜 것 중 하나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이 지친 날이면
꽃과 식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꽃을 사고,
식물을 사서 곁에 두었습니다.
바라보고,
만지고,
돌보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시간이 조금씩
제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미
꽃과 식물을 향해
조금씩 걷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스스로는
그 방향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먼저
제 눈빛을 보고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 말은 이상하게
제게 용기가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번 해봐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단숨에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보는 방향은
조금씩 분명해졌습니다.
꽃을 더 알고 싶었고,
식물을 더 가까이에서 만지고 싶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제 손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가까이할수록
조금씩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자신감은
언젠가 제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분이 제 인생의 방향을
정해준 것은 아닙니다.
제 길을 대신 걸어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랐던 시절,
제가 좋아하는 것을
저보다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방향으로 가도 괜찮다고.
개나리는
겨울이 완전히 끝난 뒤가 아니라
아직 추위가 남아 있을 때
먼저 노란빛을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나리를 보면 희망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된 뒤에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앞으로 어떤 계절이 올지 몰라도
먼저 작은 꽃 하나를
피워볼 수 있다는 것.
그 시절 그분이 제게 건넨 말도
그런 노란빛과 닮아 있었습니다.
제 삶을 대신 밝혀준 빛이 아니라,
제 안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바라보게 해 준 마음.
개나리.
희망.
그때의 저는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한번 믿어보고 싶다는 마음은
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