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음을 빼앗긴 식물

by내마음정화
시간이 흘러, 내 공간에 들인 박쥐란

박쥐란을 알기 전까지

저는 식물의 이름을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연과 풍경은 좋아했지만

그 안에 있는 식물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무렵 제 관심은

오히려 카페와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담은

작은 카페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한때는 해미읍성 근처의

오래된 이발소 자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작은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혼자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공간의 모습을 살리고,

한국적인 분위기를 담은 공간.


떡을 활용한 디저트와

매실로 만든 음료와 에이드,

천천히 내린 드립커피.


그때의 저는

무언가를 실제로 시작하기 전부터


그 안에 어떤 그릇을 놓을지,

어떤 테이블을 둘지,

사람들이 어디에 앉아

무엇을 바라보게 할지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카페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사람이 머무는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에는 SNS를 통해

카페와 인테리어,

제주의 자연과

공간을 자주 찾아보았습니다.


직접 가보지 못한 곳도 많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사진을 캡처해

오래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만든

공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곳도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여러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유난히 독특한 식물이 많았습니다.


식물이 한쪽에

장식처럼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하나의 요소처럼 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제 시선을 붙잡는 식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알던 화분 속 식물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넓게 펼쳐진 잎도,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웅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자꾸 눈이 갔고,

결국 이름까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박쥐란.

제가 처음으로

이름을 기억하고 싶었던 식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식물 하나가

그저 마음에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박쥐란을 알게 된 뒤부터

공간을 바라보는 제 시선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쁜 공간을 보면

가구와 소품에 머물던 눈이

그 안에 놓인 식물에도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식물이 놓여 있는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주변의 색과 소재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을 식재나 조경의 감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좋았습니다.


좋으니 자꾸 보게 되었고,

보다 보니 하나씩 알고 싶어 졌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공간을 만들었던 분은


제가 살던 지역에 새롭게 문을 연

한 카페의 공간도 맡게 되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새로운 카페였습니다.


이전에 다른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었던 저는

그곳에서 직접 일해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던 카페에서

그곳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료를 준비하고,

케이크를 만드는 일도 배웠습니다.


특히 저는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하나씩 배우고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하나씩 배우며 직접 만들던 시간

그러면서 그 공간을 만든 분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무용을 했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일본까지 찾아가

다양한 초콜릿을 직접 맛보고 배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금의 브랜드를

만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직접 보고 배우고,


그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결국 자신의 색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모습.


그때의 저는

아직 제 일이 무엇이 될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저도

제 일을 하게 된다면


저렇게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꽃과 식물이

제 일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훗날 꽃을 만지고,

식물을 다루고,

나무를 배우고,


공간을 생각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식물이 좋았습니다.


박쥐란.


그리고 그 식물을

알게 해 준 공간을 따라가다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의 삶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삶의 방향은 언제나

거창한 결심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장면을 오래 바라본 일,

이름도 모르던 식물을

굳이 찾아본 일,


좋아하는 것을 위해

직접 배우고 움직이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일.


그런 작은 경험들이 쌓여

제 마음속에도 처음으로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지.


그때의 저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카페를 꿈꾸며

여러 공간을 바라보던 제가


그 많은 장면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빼앗긴 식물의 이름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박쥐란.


그때는 몰랐습니다.

공간을 바라보다 우연히 알게 된

그 식물 하나가


훗날 제가 꽃을 만나고,

식물을 배우고,


나무와 공간을 바라보게 되는

삶으로 이어지는

아주 작은 시작으로

남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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