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처음부터 꽃을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제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습니다.
당시 제가 좋아했던 사람은
앙드레 김 선생님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모습이
어린 제 눈에는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때는 그저
예쁜 옷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했던 것은 옷 그 자체보다
아름다움을 무언가로
표현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무언가를 꾸미고
상상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특히
풍경을 자주 그렸습니다.
그 시절
엄마는 제게
카메라를 하나 사주셨습니다.
저는 그 카메라로
하늘을 찍고,
나무를 찍고,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담곤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제가 찍은 사진을
하나씩 인화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며
스케치북 위에
풍경을 다시 그리곤 했습니다.
카메라로 풍경을 담고
사진으로 다시 바라보고,
마지막에는 제 손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합니다.
그때의 저는
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지도 못했고,
꽃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찍은 사진과
그렸던 그림 속에는
늘 하늘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있었습니다.
저는 식물을 좋아했던 아이라기보다
자연과 풍경을
좋아했던 아이에 더 가까웠습니다.
햇살이 머무는 모습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
중고등학교 시절이 되면서
꿈은 또 달라졌습니다.
그때는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떡을 활용한 퓨전 디저트를 만들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오래된 것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한국적인 색감,
그리고 그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참 좋아했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작게나마 옷을 판매하는 일도 해보았습니다.
직접 옷을 사입하고,
사진을 찍고,
모델을 섭외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아이가
카페를 꿈꾸기도 하고,
직접 옷을 골라
판매하는 일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만 놓고 보면
계속 꿈이 바뀌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다시 바라보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계속
비슷한 것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보고,
고르고,
만들고,
꾸미며
제 마음이 가는 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
색을 고르는 것도 좋아했고,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놓였을 때
만들어지는 분위기도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데 모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 좋았습니다.
다만 그때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꽃도 아니었고,
조경도 아니었습니다.
디자인이나 공간이라는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예쁜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어릴 적 그렸던 풍경도,
카메라로 담았던 계절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마음도,
한옥과 공간을 좋아했던 취향도
서로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씩 흩어져 있던 점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아직 꽃을 알지 못했습니다.
식물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도 몰랐고,
제가 식물의 이름을 궁금해하며
한참을 들여다보게 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제 시선을
오래 붙잡아두는 식물이 생겼습니다.
웅장하면서도 낯선 모습에
한참 시선이 머물었던 식물.
그 식물의 이름은
박쥐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