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선택한 길이
정말 맞는지
스스로에게도 아직
확신이 없던 무렵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연락 한 통을 받았습니다.
시그니엘 레지던스에 거주하시는
회장님의 크리스마스트리
제작 문의였습니다.
처음에는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저를 찾아주신 걸까.
잠시 얼떨떨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약속 날짜가 정해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약속 당일,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실장님께서
직접 지하주차장까지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괜히 긴장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긴장보다,
새로운 공간을 만난다는
설렘이 더 컸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통창이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고,
따뜻한 우드 톤의 공간과
은은한 조명,
차분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공간에는
어떤 트리가 가장 잘 어울릴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크리스마스의 상징 같은
빨간색이 아니었습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노을을 닮은 따뜻한 오렌지,
공간의 깊이를 더해줄 브라운,
은은하게 빛나는 골드.
저는 트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분위기를
조금 더 아름답게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그 공간을 찾아
크리스마스트리를 완성했습니다.
작업이 마친 뒤,
실장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회장님께서
정말 만족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회장님께서 직접 찍으신 사진도
보내주셨습니다.
조명이 켜진 트리와
창밖으로 펼쳐진 야경이
하나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 안에서 무언가가
또렷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간을 읽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꽃과 식물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날은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를
완성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떤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지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조경 기능사를 준비하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도면을 배우고,
식물을 배우고,
조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하나씩 알아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날의 경험은
제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이
하나의 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것은
꽃만이 아니었습니다.
공간의 분위기를 읽고,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자연을 통해 그 공간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조경은
제게 또 하나의 자격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오래 걸어가고 싶은
방향이 되었고,
꽃과 공간,
그리고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공간은
늘 제게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 내마음정화 · 바른꽃정화
이 글은 정화가 직접 쓰는 기록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