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살아간다는 것(34)
부산의 북항(북쪽 항구)이란 곳에 상어가 나타났다. 지난 주의 일이다. 그 이후로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 방송에서도 여기서 아예 눌러살고 있는 이 상어에 대한 뉴스가 도배되고 있었다.
https://youtu.be/Px_4n8Y8abw?si=NMp_5-o05_dQvT6z
그렇다, 이 상어는 그냥 한마리의 상어가 아닌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로 유명한 아기상어의 엄마 상어일지도 몰랐고 근처 상인들에게는 요즘같은 불경기에 대박 특수를 가져다 줄 은인처럼 느껴졌을 테고 부산 북항이란 프로젝트를 막 손에 줜 전재수 부산 시장님을 비롯한 시 관계자들에게는 그것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물고 온 '은혜갚은 제비'로 생각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런 저런 당사자들의 소리없는 이해가 맞물려 이 상어를 당장 넒은 바다로 쫓아내지 않고 추석 연휴까지 이곳 북항에 머물게 해 주겠다는 통 큰 기마이(?)을 쓰는 척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기야 이 상어 한마리의 경제적 효과가 22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왔으니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경제 효과가 하늘에서, 아니, 바다에서 '뚝' 굴러들어왔으니 그걸 발로 뻥 차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다. 일단 추석명절에는 더 많은 사람이 북항을 방문하여 그 '부캉이'를 보려고 할 테니 그 때까지는 놔 두고이후에도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동물 보호니 시민 안전이니 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큰 바다로 유인하면 될 것이다.
이런 뉴스를 보았으니 나도 한번 가봐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제 오전에 온라인 게임에서 퇴근하면서 어차피 엄니가 신장 투석을 하고 있는 B병원에 가야 했었는데 마침 가는 길에 있는 북항 친수공원에 들러 보았다.
상어가 나온다는 수로옆에는 상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 모두 자신의 카메라를 켜들고 흡사 1980년대 영화 '죠스'를 찍으려던 스필버그 감독처럼 눈을 반짝이며 서 있었다. -뭐 이것조차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지만...- 어쨌든 나도 그들 사이에 서서 흡사 스필버그 감독처럼 메가폰을 쥐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레디~ 액션!'에 맞춰 부캉이가 등장해줄지 의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누군가 '저기 온다!'라는 외침을 신호로 스르르~ 점잖게 유영해 오는 부캉이~ 사람들은 레드카핏위의 스타를 보듯 상어의 등장에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어 휴대폰을 눌러댔다. 여기 저기서 휴대폰의 카메라가 플레이되는 소리가 났다. 상어는 서서히 서서히 수로 켵을 지나쳐 갔다. 수많은 스필버그들을 뒤로 한 채...
그리고 화려한 꼬리짓과 함께 유턴을 했다. 여기가 아니라는 듯... 부캉이의 꼬리짓은 아마도 사람의 언어로 해석한다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꼬리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마리의 상어 입장에서는 이 바다에 둑을 쌓고 수로를 만든 인간들의 힘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딘가 있을 통로를 찾아 계속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캉이는 그렇게 외치며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인공수로를 계속 헤엄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우리가 뭔데, 우리가 무슨 권리로 바다의 길을 바꾸고 땅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 상어보고 돌아가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한마리 상어의 방황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기후위기와 마찬가지로 이 상어에게는 재앙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더 이상 상어의 사진을 찍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이 상어를 어떻게 하면 자기가 살던 큰 바다로 내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인간들의 이기심속에 갇힌 상어를 어떻게 하면 자신이 태어난 큰 바다로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인파에서 한발자욱 물러났다. 상어의 마음도 모르면서 휴대폰 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칭 스필버그들과 함꼐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서서히 걸어서 수변 공원을 나섰다. 내가 태어난 어머니라는 큰 바다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저 상어처럼.... 부산역에서 B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9월의 에메럴드빛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