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소방관의 슬픔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85)

(사진 - sbs 8시 뉴스 캡쳐)


지난 해 10월, 광주의 한 여성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https://youtu.be/1SdzTJyXlrs?si=Kzl4qZcUKz-w3qV3


광주 소방본부에 근무했던 그 여성소방관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20대였다. 그런데 그런 어린 여직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이 조직에 몸담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물론 나역시 신임 소방사 때 그런 음주강요를 당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소방서에 들어오고 나서 첫 회식때는 나도 적잖이 당황했었다. 아침부터 밤을 세워 이어지는 등산과 족구, 음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당번과 비번 맞교대로 돌아가던 시대라 아침에 퇴근과 동시에 가까운 산을 등산하고 거기서 1차로 술을 마시면서 족구등 게임을 하고 거나하게 술이 돌면 산에서 내려와 시내에서 밤새워? 술을 퍼마시다가 다음날 새벽에 바로 센터로 출근하는 형태의 회식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에 다니느라 술을 잘 안마셨던 나는 너무 힘들어서 저녁쯤에 당시 팀장에게 그냥 집에 가보겠다는 말만 하고 사라져 그 다음날부터 그 팀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한 일년정도 고생한 생각이 난다. 그러나 그 때 분위기가 그랬으므로 그러려니 생각하고 참고 견뎠었다. 회식도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분위기였고 선배가 주는 술도 사양하지 말고 끝까지 마셔야 진정한 소방관이라는 착각(?)이 내 머릿속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당시에는 술도 잘먹고 잘놀아야 불도 잘 끈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논리가 소방을 지배하고 있었고 누가 얼마를 마셨다느니, 어젯밤 누가 말술을 먹었다느니 하는 무용담이 전설처럼 퍼져 내려오면서 후배들 사이에 회자되곤 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런 두주불사형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소방조직에 말깨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센터에서는 팀장이거나 센터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술 잘마시고 잘노는 후배를 예뻐하고 그렇지 않은 직원들은 찬밥신세였던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래서 그런 센터장이나 팀장의 비위를 잘 맞춰 주면서 술을 잘먹는 직원은 진급이나 각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그렇지 못한 직원은 거기서 뒤쳐지는 등의 불합리한 관행이 모두 이 술때문에 기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그런 회식문화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선진소방으로 변모해 온 K-소방이 아니던가? 술로 모든 것을 평가하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는 흘러간 지 오래된 옛노래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아직 그런 구태의연하 악습이 남아있다고? 그것도 딸뻘이나 되는 어린 여직원을 앉혀놓고 술을 강요하고 심지어는 노래방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고? 정말 누가 들을까 겁나는 얘기가 아닌가?


거기다가 여직원의 자살 동기를 자기네들 맘대로 남자친구와의 불화로 꾸며 공문을 시달하고 거기에 반박하러 온 남자친구와 유가족들의 감찰요구를 묵살하는 등, 사건의 진행을 놓고보면 광주소방본부가 어떤 곳인지 의아할 정도가 아닌가? 누가 들으면 소위 말하는 조폭 세계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정말 같은 소방본부 소속은 아니지만 같은 제복을 입고 같은 일을 하는 대한민국 소방관으로서 못봐줄 꼴불견이다. 이십년도 더 지난 구태의연한 악습을 재현하면서 자기 식구 감싸느라 -하긴 그 여자 소방관은 어쩌면 자기 식구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해야 할 감찰사무를 마음대로 굽게 하는 이런 조직을 그 어떤 국민이 신뢰해 주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거기에 관계된 모든 관계자들을 소방청이 아닌, 제 3의 기관에서 진상을 규명하여 일벌백계로 처벌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여자 소방관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 후배들이 우리들이 강요당했던 그런 어둠의 술문화에서 벗어나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시민과 국민들에게 맡은 바 사명을 다해 봉사하는 것으로 환골탈태하는 진정한 K-소방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