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살아간다는 것(33)
엄니는 그렇게 또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내 기억으로 골절만 이번이 세번째였다. 동네 입구에서 넘어져 입원했던 발가락 골절, 이번과 마찬가지로 욕실에서 나오다 미끄러져 다친 허리 압박 골절, 그리고 이번에 골반 골절까지... 그 때마다 투석을 하고 있는 B병원에 입원했었고 처음에는 내가 간병을, 두번째는 간병인이 간병을 했었다. 이번에도 간병인의 도움을 얻어야 할 것 같았다.
B병원에도 통합간병실 -대여섯 명의 환자를 병원에서 고용한 한두명의 간병인이 돌보는 입원실-이 있긴 했지만 엄니의 경우에는 침대에서 꼼짝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고 1대 1로 쓰는 간병인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하루 간병일당이 세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지만 병원에서는 그런 간병인을 부르거나 가족이 간병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나나 누나가 온라인 게임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팽개치고 엄니를 간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엄니는 4인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꼼짝도 못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누워있으니 그 먹은 것도 소화가 안되고 그러니 누워서 배설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집과는 달리 낯선 곳에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밤에 잠이 올리 만무했다. 잠이 안오니 수면제를 먹어야 하고 배설이 안되니 변비약을 먹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엄니는 이런 병원 생활이 계속되는 요양병원에는 가기 싫어했다. 거기에 한번 들어가면 영원이 못나오는 줄 알고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엄니는 요양병원에 있다 돌아가신 큰 고모를 봐왔기 때문이었다. 가끔 큰 고모 병문안을 가면 병실 가득 풍겨나던 지린내, 엄니는 그 냄새를 잊지 못하시는 걸지도 몰랐다. 거기다 갈 때마다 점점 사람을 못알아보시는 큰 고모를 보면서 엄니는 요양병원이란 말에 노이노제가 걸리신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영리하던 사람인데 점점 갈수록 사람을 못 알아보네, 말도 횡설수설하고...쯧쯧..."
병원문을 닫고 나오면서 엄니는 혀를 끌끌 찼다. 멀쩡한 사람 들어가 환자 만드는 게 요양병원이라고 믿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엄니가 이대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될 말이었다.
4주가 지나고 엄니가 휠체어를 슬슬 타다가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병원에서는 퇴원하라고 했다. 이제 좀 걸을 수 있으니 집에서 알아서(?) 병원으로 와서 투석을 받던지 아니면 투석이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게 왜 4주냐면 4주가 지나면 정부에서 병원에 주는 지원금이 끊긴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4주가 지나면 웬만한 환자는 내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간호사로 있는 누나 친구에게 들은 얘기였다. 엄니는 당연히 집에서 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 있으면서 투석하러 병원에 통원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다 보니 나와 누나가 번갈아 가며 본가에서 엄니를 간병했다. 내가 근무인 날은 누나가, 내가 비번일 때는 내가 엄니를 간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니, 엄니는 이렇게 꼭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꼭 병원 신세를 지더라니... 안 그래요?"
내가 엄니를 슬쩍 떠보았다. 정말이지 엄니는 당신의 생일쯤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쯤엔 이렇게 병원신세를 지셨던 것이다. 연래행사처럼, 그것이 코로나든, 독감이든, 골절이든, 수술이든 뭐든 간에...
"그러게, 니들하고 제주도에 노란 유채꽃밭도 가보고 싶고 하동에 벚꽃길도 걸어보고 싶은데 꼭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이런 좋은 시절을 보내야 하다니, 내가 암만 생각해도 요시랑타~"
엄니는 창밖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보면서 가냘픈 소녀처럼 웃었다. 봄이 찬란한만큼 당신의 꿈도 찬란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누워서 바깥의 햇살과 벚꽃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엄니, 어떻게 휠체어라도 타고 나가서 저 벚꽃을 볼 테유?"
난 소녀같이 웃는 엄니를 슬쩍 나꾸어 보았다.
"그러자, 아파트 안에 벚꽃이라도 보자, 그거나 그거나 뭐 다를 게 있다구?"
엄니는 내가 나가자는 말이 반가우신지 얼른 휠체어에 올라타셨다. 그리고 아파트 앞마당에 핀 벚꽃과 목련을 보면서 그 꽃들처럼 웃음을 터뜨리셨다.
"올해도 니들을 이렇게 보는 구나, 올해는 못볼 줄 알았더니..."
엄니는 한달간 지내던 병원에서 퇴원해 이렇게 다시 벚꽃과 목련은 보시는 게 반가우신지, 웃다가 눈에 눈물이 고이셨다. 봄 햇살에 반짝이는 눈물맺힌 엄니의 눈을 차마 난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엄니, 얼른 들어가유, 이제 해 지면 추워요~"
"아니다, 좀 더 있으련다. 이런 꽃들을 내가 봐 줘야지, 누가 봐 주겠니?"
엄니는 아파트 안에 핀 꽃들이 당신처럼 생각되는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웃으셨다. 엄니의 찬란한 봄이 어느새 지려 하고 있었다. 내일 또 필 날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