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설산, 람월곡, 인상리장 공연
새벽 여섯 시.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숙소를 나선다.
오늘은 이번 윈난 여행의 마지막 여정, 옥룡설산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은 간단한 도시락으로 대신한다. 우유와 빵, 그리고 가이드가 직접 삶아 온 따뜻한 고구마까지 먹었다.
차창 밖으로 여명이 밝아온다.
옥룡설산은 리장 북서쪽에 자리한 거대한 산맥이다. 최고봉은 해발 5,596m에 이르며, 나시족에게는 오래전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506m의 빙천공원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두 발로 걸어야 한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차마고도 트래킹이 걱정되어 모악산을 오르며 연습했고, 집 근처 호수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걸었다.
그래도 높은 산은 달랐다. 몇 걸음 걷고 숨을 고른 후 다시 걸어야 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깊게 호흡하고, 답답할 때는 산소통에 의지하며 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올라간다.
옥룡설산에는 지금도 빙하가 남아 있다. 하지만 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빙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줄어들고 있다.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기대하고 왔지만, 자연은 내가 기대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풍경도 하나둘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4,680m 표지석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 앞에 선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다.
“와, 해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는 기쁨이 밀려온다.
하지만 기대했던 설산의 봉우리는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아쉽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가볍다.
산 아래로 내려와 람월곡으로 향한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따라 여러 호수를 이루고 있다.
햇빛을 받은 물은 푸른빛과 청록빛으로 반짝인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신랑 신부들도 눈에 들어온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계곡을 지나 이곳에 머물고, 다시 아래로 흘러간다.
여행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다시 흘러가는 것.
점심을 먹고 《인상리장》 공연을 보러 간다.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 장예모가 연출한 대형 실경공연이다.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리장 지역 소수민족의 삶과 차마고도를 오갔던 마방들의 이야기를 노래와 춤, 음악으로 풀어낸 공연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거대한 무대가 펼쳐진다.
수백 명의 배우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무대와 웅장한 음악,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이어진다.
여행상품에서 보았던 사진으로는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마주하니 중국이라는 나라의 규모만큼이나 무대도, 사람도, 이야기도 컸다.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 마방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들, 험준한 산길을 넘어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가 며칠 동안 걸었던 차마고도가 떠오른다.
우리는 여행자로 그 길을 걸었지만, 누군가에게 그 길은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제야 이번 여행에서 보았던 산과 길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길에는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길을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다.
객석을 나서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마음에 담는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까.
아마도 특별한 풍경 하나가 아니라,
낯선 길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던 순간과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용해졌던 순간들일 것이다.
돌아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익숙한 길에서 한 번 더 걸음을 늦추게 하는 마음.
여행은 그렇게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