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천년의 수도를 걷다

호찌민 묘소와 성요셉 성당 방문

by땡자랑

여행은 같은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의 하노이는 나에게 낯선 도시였다. 공항에서 원불교 하노이교당으로 향하는 길은 오토바이 행렬로 가득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타이빈성 홍하현 초등학교에서 4일 동안 교육봉사를 마친 뒤 다시 만난 하노이는 달랐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비로소 도시를 천천히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마지막 아침은 교당 옆 소문난 온라인카지노 카페에서 시작했다. 진한 베트남 커피와 샐러드, 따뜻한 수프를 먹으며 봉사단원들과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출근길 사람들은 바게트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답게 골목마다 카페가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고,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전해진 커피 문화는 어느새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딘 광장에 자리한 호찌민 묘소였다.


바딘 광장은 베트남 현대사의 출발점이다. 1945년 9월 2일, 호찌민 주석이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탄생을 세계에 알렸다. 지금도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 호찌민 관저가 주변에 자리해 베트남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묘소 앞에는 예상보다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베트남 국민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랑이 설치되어 있어 강한 햇볕은 피할 수 있었고, 간간이 내리는 비는 오히려 여름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호찌민은 베트남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초대 주석이다.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독립과 통일의 상징으로 존경받는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도, 대화도 허용되지 않았다. 모두가 조용히 걸으며 그의 유해를 둘러보고 나왔다. 관광지라기보다 한 나라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묘소를 나와 한 기둥 사원으로 향했다.


1049년 리 왕조 시대에 세워진 이 사찰은 하나의 돌기둥 위에 목조건물을 올린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연꽃 위에 핀 꽃을 형상화한 건축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 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베트남 불교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작은 규모의 사찰이었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는 하노이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성요셉 성당이었다.


오후 2시, 성당의 문이 열렸다. 문을 기다리는 동안 성당 앞 광장을 천천히 걸었다. 노천카페에는 여행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골목에는 오래된 건물과 작은 상점들이 이어졌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흔적과 오늘을 살아가는 하노이 사람들의 일상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1886년에 건립된 성요셉 성당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회색빛 외벽과 두 개의 첨탑은 하노이 구시가지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은은하게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높은 리브 볼트 천장은 중세 유럽 성당을 떠올리게 했고, 제단에는 베트남 전통 목조건축 기법이 더해져 동서양 문화가 한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노이는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1010년 리 태조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 이후 지금까지 베트남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도시를 걷다 보면 전통 사원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축물, 슬롯주의 체제의 상징적인 건물, 그리고 현대적인 고층빌딩이 한 장의 지도 위에서 서로 다른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일정은 서호 인근의 롯데몰이었다.


홍강이 범람하면서 형성된 서호는 하노이에서 가장 큰 자연호수다. 최근에는 외국 대사관과 고급 주거단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도시 중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오래된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신도심이 공존하는 하노이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공간이었다.


마트에서는 귀국 선물을 골랐다. 베트남 커피와 과자, 견과류를 장바구니에 담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분주했다. 부담 없는 가격 덕분에 여행의 마지막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하노이가 어느새 익숙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홍강이 만든 비옥한 평야 위에 천 년의 역사를 품은 수도,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흔적과 슬롯주의 체제,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는 현대 도시가 한 곳에 공존하는 곳. 하노이는 단순히 베트남의 수도가 아니라 시간을 품고 성장해 온 도시였다.


이번 시내 투어는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일정이 아니었다. 호찌민 묘소에서는 베트남의 현대사를, 성요셉 성당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건축문화를, 서호 일대에서는 오늘날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베트남의 사람들을 만났다면, 하노이에서는 그 나라의 시간과 공간을 만났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하루는 가장 조용했지만, 가장 오래 기억될 도시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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