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품은 시간, 하롱베이를 만나다

베트남 하롱베이 관광

by땡자랑


베트남 해외 봉사활동의 마지막 일정은 하롱베이(Hạ Long Bay)였다.


나흘 동안 봉사활동을 마친 우리는 새벽 5시 40분, 하노이 원불교 교당 숙소를 출발했다. 목적지는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꽝닌성의 하롱베이. 버스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다.


7월 초 베트남 북부는 우기의 한가운데다. 숙소를 나설 때는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혹시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관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연안터미널에 도착하자 빗줄기는 잦아들었다. 구름은 여전히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오히려 하롱베이의 풍경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나는 새로운 여행지를 만나면 가장 먼저 지도를 펼쳐 본다. 아름다운 풍경보다 먼저 '왜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을까'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롱베이는 베트남 북동부 꽝닌성(Quảng Ninh Province), 중국과 맞닿은 통킹만(Gulf of Tonkin)에 자리하고 있다. 약 1,500㎢의 바다 위에 1,600여 개의 석회암 섬이 흩어져 있는 세계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다. 수억 년 전 형성된 석회암 지층이 오랜 세월 빗물과 바닷물에 침식되면서 지금의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전 9시, 앰배서더 크루즈가 부두를 천천히 떠났다.


처음에는 황톳빛을 띠던 바닷물이 점차 맑은 에메랄드빛으로 바뀌었다. 홍강을 비롯한 북부 하천이 실어 나른 흙이 연안에서는 바다를 탁하게 만들지만, 외해로 나갈수록 맑은 바닷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여행자는 그저 물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 색의 변화에도 지형과 하천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멀리 보이는 섬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무가 우거진 산이라기보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석회암 기둥이었다. 봉우리마다 서로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 인위적인 느낌은 없었다. 자연은 수억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거대한 조각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루온 동굴(Luon Cave)이었다.


카약과 대나무배 가운데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대나무배를 탔다. 낮은 동굴 입구를 지나자 높은 석회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잔잔한 공간이 나타났다. 바람도 파도도 잠시 쉬어 가는 듯한 곳이었다.


노를 젓는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위 위에서는 원숭이들이 관광객을 신기한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굴을 빠져나오는 동안 마주치는 배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지에서는 낯선 사람도 잠시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동행이 된다.


이어 찾은 승솟 동굴(Sung Sot Cave)은 하롱베이를 대표하는 석회동굴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종유석과 석순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방울의 물이 수백 년 동안 떨어져야 겨우 몇 센티미터 자라는 종유석. 그 앞에서는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새삼 느끼게 된다.


크루즈로 돌아오니 점심 뷔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베트남 음식과 한국 음식이 함께 차려져 있었고, 열대과일이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음식보다 풍경이 더 큰 반찬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티톱섬(Ti Top Island)으로 향했다.


섬에는 해수욕장과 전망대가 있다. 우리는 약 400개의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올랐다. 습한 날씨 탓에 땀이 흐르고 숨이 찼지만, 계단을 오를수록 하롱베이의 풍경은 조금씩 넓어졌다.


정상에 서는 순간, 왜 하롱베이를 '바다의 계림(桂林)'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수없이 떠 있는 석회암 섬들. 같은 풍경인데도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색이 달라지고, 햇빛이 비칠 때마다 섬의 윤곽도 달라졌다. 아름다운 풍경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함께 변하는 모습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하롱베이가 알려 주었다.


오후 4시 30분, 크루즈는 다시 연안터미널로 돌아왔다.


하노이로 향하는 길에는 다시 비가 내렸다. 퇴근 시간까지 겹쳐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네 시간이 걸렸지만, 버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마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여행은 유명한 장소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곳이 품고 있는 시간을 만나는 일이다.

하롱베이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수억 년 동안 바다와 비가 함께 빚어낸 자연의 기록이었다.


구름은 흘러가고, 바다는 잔잔했으며, 수천 개의 석회암 섬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의 시간은 짧지만 자연의 시간은 길다.


봉사활동을 마친 우리의 베트남 여정은 하롱베이에서 끝났지만, 그날 바라본 바다의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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