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팽나무와 할매

황석영의 할매를 읽고 나서

by땡자랑

황석영 작가의 '할매'를 읽고

군산 하제마을의 팽나무를 직접 보고 싶어졌다.

오월의 햇살 아래 초록이 짙어가는 날, 비행장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는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하제마을 쪽 샛길로 접어들자 ‘팽나무로 가는 길’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오래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거대한 팽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 말고도 나무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 둘레에는 보호를 위한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나무를 바라보았다.


하제 팽나무는 600년의 시간을 견뎌온 나무다.

뿌리에서 솟아오른 굵은 등걸은 마치 땅의 숨결이 응고된 듯했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에는 연초록 잎들이 무성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양옆에는 버팀목이 받쳐져 있었다. 천연기념물과 문화재 지정 안내판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한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소설 속에서 동수는 팽나무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 것 같은 엄청난 모습의 나무”라고 말한다. 실제로 마주한 팽나무 역시 그러했다. 아무것도 없던 평지 위에서 갑자기 솟구쳐 오른 거인의 몸처럼 위엄이 있었다. 꿈틀거리며 땅을 뚫고 나온 듯한 몸통과 힘차게 뻗은 가지들은 오랜 세월을 견딘 생명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에 먼저 온 사람은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를 만든 황윤 감독과 일행이었다. 감독은 지금 ‘하제’를 주제로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고 했다. 나 역시 영화 '수라'를 보며 새만금 갯벌의 상처와 생명의 가치를 깊이 느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장소를 오래 기록하고, 사라져 가는 풍경을 끝까지 붙들어두려는 감독의 작업은 경이롭게 느껴졌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예술가의 집념이 존경스러웠다. 팽나무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영화가 완성되면 꼭 극장에서 보겠다고 약속했다.


소설 11장에서는 새만금 갯벌 이야기가 이어진다.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던 시기, 방지거 신부는 '해창 갯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삼보일배를 한다. 세 걸음마다 한 번씩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갯벌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실제로 문정현 신부는 새만금 사업을 막기 위해 삼보일배를 실행했다. 그러나 결국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는 완공되었다. 지금의 새만금은 산업단지와 관광지, 재생에너지 사업지로 변모하고 있다. 황석영 작가는 작품 말미에서 갯벌에 관한 자료가 황윤 감독의 영화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소설과 다큐멘터리가 서로의 기록이 되어 한 시대의 상처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하제의 팽나무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600년의 시간을 견디며 이 땅의 역사를 바라보아 왔다.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 속에 굶주리던 백성들,

서학의 전래와 천주교 박해로 인한 순교자들,

반봉건과 반외세의 근대화 운동인 동학 농민 운동,

일제강점기 군산비행장에서 가미카제로 희생당한 젊은 생도들,

그리고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져 간 갯벌의 풍경까지.

황석영은 거대한 역사를 한 그루 팽나무의 기억 속에 담아내며 독자들이 조용히 읽어내도록 한다. 담담한 문장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군산 하제를 배경으로 600년의 시간을 이어온 할매를 읽으며 나는 감사하고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들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글을 쓰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은 결국 얼마나 깊이 공을 들였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군산에도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와 풍경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이 하제를 찾고, 팽나무 아래에 서서 군산의 시간을 함께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오키나와 나하, 일상과 여행이 만나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