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단순하다. 평생 딱 몇 번만 크게 틀리지 않으면 된다"
파이어를 시작한 뒤 저는 이 말을 정말 많이 떠올렸습니다.
서울 아파트를 팔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제 통장에는 평생 만져본 적 없는 큰돈이 들어왔습니다. 아파트 매도금과 기존 자산을 합치니 숫자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끝난 건가?"
잠깐 그런 착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평생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돈은 앞으로 우리 가족이 평생 의지해야 할 돈이었습니다. 이 돈을 굴려서 매달 생활비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목표는 수익률이 아니라 생존이 됐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상가 건물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 상가 투자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월세만 꼬박꼬박 나오면 노후 걱정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산 곳곳의 상권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빈 점포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새로 생긴 카페가 몇 달 만에 사라지는 일도 흔했습니다. 저는 자산을 살 때 항상 스스로에게 하나를 묻습니다.
'이걸 20년 동안 관리할 자신이 있는가?'
상가는 아니었습니다. 상가는 포기했습니다.
다음은 배당주였습니다. 매달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유튜브에는 배당금으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동안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자세히 볼수록 불안했습니다. 배당소득세도 생각해야 했고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세금 부담도 커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물가 상승이 계속된다면 지금의 배당금이 20년 뒤에도 같은 가치를 가질 거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배당주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것도 위험해 보였습니다.
보험사 연금 상품도 상담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게 필요한 건 먼 미래의 연금이 아니라 지금부터 자산을 운용하는 유연성이었습니다. 결국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기존에 자산을 증식하던 방식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문투자자도 전업투자자도 아닙니다. 정보에서 이길 수도 없고 시장을 꾸준히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존에 꾸준히 매수하던 시장 지수를 이제부터는 훨씬 더 큰 규모로 사기로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상향했고 수많은 기업이 성장하면 제 자산도 함께 성장하는 구조. 그게 제가 S&P500과 나스닥100을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또 투자한 뒤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시장이 올랐다고 비중을 자주 바꾸지도 않았고, 뉴스 하나에 전략을 수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투자에서 가장 비싼 비용은 잦은 판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수에 투자한 후에는 투자에 쓰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저에게는 수익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투자자산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아이와 놀고, 사업을 하고, 바카라을 읽는 시간이 더 큰 복리를 만든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한 번에 투자하지는 않고 10개월에 걸쳐 분할 매수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틀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맞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닥을 맞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간을 분산했습니다. 가격을 예측하는 대신 확률을 선택한 것입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기계처럼 매수했습니다. 주가가 올라도 사고, 주가가 내려도 사고, 뉴스가 시끄러워도 샀습니다.
큰 돈이 생기자 고민이 되는건 세금이었습니다. 투자자는 수익률에는 민감하지만 세금에는 둔감합니다.그런데 자산이 커질수록 가장 큰 비용은 수수료도 아니고 매매도 아닙니다. 바로 세금입니다. 저는 투자보다 먼저 최대한 절세할 수 있는 계좌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자산은 배우자 증여 공제를 활용해 아내 명의로 이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투자에서는 종목 선택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계좌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종목을 잘 고르는 것만큼 중요해집니다. 같은 수익을 내도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고, 그 차이는 10년, 20년이 지나면 복리처럼 벌어집니다.
부부 각각 ISA 계좌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ISA는 단순히 절세 계좌가 아니라 복리를 오래 유지하게 해주는 계좌라고 생각했습니다. 매년 한도까지 채워 국내 상장 미국 지수 ETF를 매수했습니다. 파이어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수익률만큼 중요한 것이 세금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0% 더 버는 것보다 세금을 10% 덜 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때도 많았습니다.
파이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자 계좌가 아니라 현금흐름 계좌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는 오래 버티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버티고 싶어도 버틸 수 없습니다.
시장이 폭락해서 파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비 때문에 팔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투자보다 먼저 생활비를 확보했습니다. 시장이 폭락해도 최소 5년은 투자 자산을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5년치 생활비를 현금성 자산으로 확보했습니다. 정기예금, MMF, 단기채 ETF 등을 활용했습니다. 수익률은 낮았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수익이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이 계좌 덕분에 시장이 폭락해도 주식을 팔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투자 계획을 세운 뒤에도 유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마침 증시가 활황장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매일같이 돈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야 이거 하루 만에 15% 먹었다"
"이번 종목은 진짜 대박이다"
"지금 안 타면 늦는다"
예전 같았으면 저도 따라 들어갔을 겁니다. 사실 계산도 해봤습니다. 지금 자산 규모라면 운 좋게 급등주 하나만 잡아도 하루에 2년치 생활비를 벌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유혹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잃으면?
반대로 하루에 2년치 생활비를 날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 돈은 제 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와 보낼 시간
아이와 보낼 시간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
그 시간을 걸고 도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같은 것만 기계적으로 샀습니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습니다. 하루에 20% 오르는 일도 없었습니다. 주식 커뮤니티에서 자랑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굼벵이처럼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계좌는 꾸준히 커졌습니다. 생활비 계좌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습니다. 투자 계좌는 한 번도 인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 자라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얼마를 벌었냐고 묻습니다. 저는 지금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내 자산은 내가 없어도 우리 가족을 얼마나 오래 지켜줄 수 있는가'
결국 파이어는 얼마를 버느냐의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게임이었습니다.
수익률은 시장이 결정합니다. 하지만 생존율은 투자자가 결정합니다. 저는 높은 수익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투자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저는 시장이 오르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시장이 와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듭니다.
파이어는 돈을 많이 버는 기술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