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여행에도 감성이 돋는다

- 6개의 섬을 들른 1박 2일

byCha향기

Y 부부와 인연이 닿은 것은 30년도 넘었고 매달 한 번, '한지붕'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그런데 14년 전, 우리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드러눕게 되면서 한지붕 만남이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다가 내가 정년 퇴임하면서부터 다시 한지붕 모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Y의 아내, L이 암 진단을 받았다. 의학이 발달한 시대라 '그깟 초기 암쯤이야'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 L이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컨디션이 별로라서 그렇다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다음 모임이 있기도 전에 L은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 기둥 하나가 빠졌으니 한지붕은 의미를 잃었다. 그래서 한지붕 단톡방에 더 이상 모임이 어렵겠다는 마음을 살포시 전했다. 우리 부부가 Y와 만난다는 것이 아무래도 머쓱할 것 같았다. 위로는커녕 떠나버린 L에 대한 그리움만 사무칠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한지붕을 끝내면 안 되지"라고 했다.

비통에 젖어있는 Y와 함께 1박 2일, 애도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그런 후에 나는 자연스럽게 빠지고 남편과 Y가 종종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다고 남편이 제안했다. 그래서 지난 명절에 함께 보냈던 K 부부도 이번 여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선재도에 숙소를 잡았다. 가을 바다를 보며 슬픔을 조금이나마 삭히고 돌아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날 영종도에서 대규모 점심 만찬 모임이 있었다. Y는 평소에 잘 지냈던 다른 두 가정도 끌어들여 번개 여행이 되었다. 그 두 가정은 1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을 나들이를 그 누가 마다하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시화 방조제를 건널 때 불어오던 바람으로 우린 이미 설레고 들떴다.


평생의 반려자를 보내고 휘청거리는 Y도 그렇지만 저마다 자신의 삶터에서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간 숨 막히게 견뎌왔던 이야기를 하는 다른 한 가정의 아픔을 들었다. 빛깔만 다를 뿐이지 모두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인생길을 걷고 있었다.


이윽고 9명이나 되는 일행이 선재도에 당도했다. 물때가 잘 맞아서 목섬이 눈앞에 덩그러니 드러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많은 사람이 목섬으로 건너가 갈라진 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다. 목섬은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섬 33곳' 중 1위로 소개된 명소다. 자연의 재롱 앞에 소리 없이 미소를 지으며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다와 바람을 마주했다.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목섬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접어들었다. 그 길에서는 어디를 배경으로 해도 영화 장면 같았다. 일행 K 부부가 걸어오는 장면을 찍었더니 영락없는 영화 포스터였다. 사진을 보면서 누군가 사진 제목을 '눈이 부시게'라고 하면 되겠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일행 부부를 찍은 그 사진에 '눈이 부시게'라는 멘트를 넣고 이미지를 구현했다. 그들은 사진을 찍고 있다는 걸 몰랐으니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배경은 자연이 다 해주었고 그 찰나를 카메라에 담았을 뿐인데 하나의 작품이 됐다.


"이걸 브로마이드로 출력하여 커다란 액자에 넣어 걸어둬야겠어요."

K가 말했다.


"인생 사진 하나 건지셨네요."

다른 분들도 함께 웃으며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참에 영화배우로 나가시죠?"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애도 여행 중에 새록새록 감성이 돋았다. 그게 매직처럼 슬픈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영화 화보 같은 사진

지난해 연말에 바라봤던 목섬을 다시 마주하니 한 해가 쏜살같이 흘렀다는 감회가 밀려왔다. 망망대해 앞에 서니 푸념과 근심이 무색해졌다. 목섬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더러는 신발을 벗고 걸었고 한쪽에서는 나 잡아보라고 하면서 해변을 마구 달렸다.


그런 와중에 간간이 Y를 살펴보니 부쩍 하얘진 머리카락과 핼쑥해진 얼굴이 새파란 하늘 아래 더욱 돋보였다. 모두 부부가 동행했는데 Y만 외로운 갈매기처럼 홀로였다. 늘 함께였던 반려자가 곁에 없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으리라. 가을을 시샘하는 짠 바람이 간간이 불어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커다란 슬픔의 덩어리가 자잘하게 쪼개져 통증이 줄어들 것이다.




▲목섬/ 언제 봐도 신비로운 섬

전복 영양밥과 해물전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 맛집에서 내려다본 목섬 풍경은 너무 멋졌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뷰 맛집이었다. 이윽고 노을이 지기 시작하니 먹던 식사를 잠시 멈추고 밖으로 나가 노을 맞이를 했다. 우리는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하하 호호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서로에게 말없이 위로하는 눈빛을 보냈다. 밤이 이슥해지자 두 가정은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세 가정은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마련된 부대 편의시설에서 포켓볼을 몇 판 쳤고 노래방도 갔다. 노래쟁이 Y였는데 간간이 목이 메어 노래방 기계만 속절없이 재생될 때가 있었다.


"아, 왜 모든 노래 가사가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되어 있는 거야?"라고 Y가 울먹였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에 눈물짓기도 했다. 슬플 때는 울어야 속이 후련해지는 법이다. 그렇게 우리는 목을 놓고 생 목소리로 한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런 애도의 과정이 지나면 우리 모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이튿날 체크 아웃을 끝내고 영흥대교를 건너 장경리 해변에서 아침노을을 봤다. 맑고 투명한 느낌과 함께 푸른빛이 섞인 오묘한 색감을 띤 노을이었다. 계획에 없었던 여정이라 덤으로 얻은 선물 같았다.


선재도를 빠져나오는 길에 대부도 골프장으로 들어갔다. 운전을 맡은 K가 여행 코스를 주도면밀하게 잘 운영하여 그런 곳도 들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아이랜드 방주교회라는 특이한 건물이 있었다. 재일 교포 2세, 이타미 준(유동요)이 설계한 건물인데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미가 돋보였다.


오이도에 들러 오겹살구이와 잔치 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해물을 잔뜩 먹었던 전날과 달리 고기를 먹으니 색달랐다. 또다시 만나자며 어설픈 약속을 해댔다. 애도 여행에도 감성이 돋았고 이별 여행에도 꿈은 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슬픔과 그리움을 다소 내려놓아 맘이 가벼워져 있겠지.


IE003682207_STD.jpg▲영흥도와 대부도에서


오마이뉴스 탑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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