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명절 나기
7남매 장손 맏며느리지만 14년 전부터는 명절이란 걸 잊고 지냈다. 한순간에 당한 사고로 아들이 중증 환자로 누워있기 때문이다. 명절 쇠러 가는 간병인을 대신하여 명절마다 독박 간병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 아들을 돌보는 활동 지원사 모두 당직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어 우리는 인생 명절을 맞이했다. 뜻밖에 생긴 자유를 어떻게 누릴까 궁리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추석날 번개 모임 가집시다."
라고 지인 A가 말했다. 그분은 석 달 전에 부인을 하늘나라에 보냈고 여전히 애도 기간 중이다. 그분의 외동아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잖아도 쓸쓸하게 보내던 명절이 이번에는 A 혼자 혈혈단신이다.
지인 B는 자녀가 없다. B는 명절마다 A 집에 가서 함께 명절을 쇠곤 했다. B는 여러 종류 요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재료만 있다면 뚝딱뚝딱 무슨 요리든 해낸다. 어느 해였던가? 우리도 그분들과 명절을 보냈던 적이 있다.
명절이 유난히 외로운 세 가정의 모임이었다. A가 꽃게와 갈비, 그리고 과일을 준비했고 B 내외는 꽃게탕을 끓이고 갈비를 구워냈다. B 내외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침개를 부치고 나물을 준비했다나. 여느 명절 상 못지않은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지인 C가 명절 음식을 챙겨 A에게 왔다. 명절에 외로운 사람을 챙기는 C의 모습이 참 든든해 보였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느꼈다. 식사 후에 커피와 음료를 배달 주문했다. 외로움끼리 모이면 외로움이 힘을 잃게 되는 모양이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똑똑, 혹시 지금 댁에 계시나요?"
라고 카톡이 왔다. 지인 D가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을 듬뿍 챙겨 들고 왔다. 레몬, 알밤, 풋고추, 송편, 가지, 상추 등등이었다. D의 올케 E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고 했다. 모시송편은 보자마자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쫄깃한 모싯잎 반죽 속에 고소하고 담백한 동부콩 소를 가득 채워 만든 남도(특히 전남 영광)의 대표적인 전통 떡이다. 결혼하여 신혼 때 처음 맛봤던 떡인데 세월이 훌쩍 지나 이렇게 그 떡을 먹어봤다. 무려 40여 년만이다. 그 떡을 먹으며 웃고 지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저녁 식사로 모시송편을 먹으며 추억을 반추했다.
TV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만남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게다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며 사법부와 행정부 간의 정면충돌 상황을 다루는 뉴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추석 밥상머리에서 국내외 민감한 정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이 진행되고 있어서 즐겁기도 했다. 함께 모이는 가족 중에 그 경기를 돌려가며 보느라 여념 없을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베트남과 축구 8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또 다른 채널에서는 일본과 야구를 하고 있었다. 형편없이 무너지는 야구 경기를 보자니 맥이 빠졌다. 설령 가위바위보 게임을 할지라도 일본과 한다고 하면 열불을 내게 되는 우리 심리가 있는데, 마냥 속수무바카라으로 지고 있는 야구를 지켜보자니 기가 막혔다. 축구 경기는 칭찬할 정도로 선수들이 경기를 잘 운영하고 있었다. 정교한 패스와 골 결정력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또 다른 채널에서는 남자 3대3 농구가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3대3 농구는 처음 봤다. 양편으로 나누어서 골을 넣는 게 아니라 골대를 하나만 이용하는 게 특이했다. 골대 1개를 사용하는 반코트(Half-court) 농구였는데 정식 코트가 필요 없는 길거리 농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2년 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낸 남자 농구 경기 장면이 재방송되고 있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 것을 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야구는 6회 말이 되었는데도 0 : 5로 지고 있어서 볼 맛이 나지 않았다. 축구 경기 하프 타임에는 다른 채널에서 중계되는 방송을 봤다. 그러잖아도 풍성한 한가위인데 아시안 게임까지 더하니 더할 나위 없이 알차고 좋았다.
축구, 농구 선수들의 목덜미에 흐르는 땀방울을 보니 그냥 TV만 보고 있을 게 아닌 것 같았다. 추석 연휴 동안 헬스장이 휴관이라 운동은 못하고 있는데 먹기는 더 먹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열심히 운동해 왔던 것이 도로 아미타불이 되겠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고 밀어 두었던 황토 매트를 꺼내 그 위에서 제자리 걷기를 하며 TV를 봤다. 선수들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고 그 화면 앞에서 나도 땀이 송송 났다.
그들이 뛰니 나도 뛰었다. 그들이 땀 흘리니 나도 땀을 흘려야 할 것 같았다, 듬뿍 땀을 흘린 후에 샤워까지 마쳤다. 오늘 흘린 땀은 오늘 씻어내야 하는 법이다. 여느 때보다도 알차게 보낸 명절이었다.
오마이뉴스 탑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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