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현역' 시대가 오고 있다

[리뷰] 유선진 산문집 <한 평 반의 행복>

byCha향기

바야흐로, 고령화 시대다. 슬롯의 일원으로 자기 소임을 다하는 80대 현역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분들의 삶을 보노라면 훗날 우리가 마주할 '우리의 노년'이 보인다.


이 바카라을 읽고 나니, 80대가 되어도 일상을 스스로 챙기고 자녀에게 손 내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저자는 85세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후 결혼 53년 차를 맞은 노부부가 한 평 반 남짓한 침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늙고 병든 남편을 돌보면서도 저자는 깊은 사랑과 삶의 잔잔한 행복을 그리고 있다.


저자의 남편은 이미 15년 넘게 파킨슨 증후군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몸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사무실로 오가며 일을 이어갔다. 직원의 실수로 사무실이 가압류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겪으면서 남편은 결국 쓰러졌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나중에 겪게 될 이들을 위해 기록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삶의 철학이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병원에서 지낸 이후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돌보면서 지난날의 회한과 지금에 이르러 감사하기까지, 틈틈이 일상의 일들을 써 내려간 글에는 작가의 부끄러운 고백과 반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오래 살다 보면 누구나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부부 중 덜 아픈 쪽이 병든 배우자를 수발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다. 남편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남편과 갈등이 많았던 사이였지만, 늙고 병들어 무력해진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며 돌보게 되었다는 고백은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저자에게서 할머니 냄새보다는 한두 살 언니가 얘기해 주는 듯한 친근함을 느꼈다. 세대 차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부모 세대임에도 여전히 가정 살림을 꾸리고, 남편을 돌보며, 음악회를 다니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1부는 남편의 마음으로 아내가 쓴 이야기였다. 전지적 남편 시점으로 적은 두 편의 글, '아빠가 뿔났다'와 '어떤 월급날'에서는 남편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장(家長)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존재가 보인다.


월급쟁이로 가족 부양에만 매달려 살아온 50년 동안 놀 줄도 모르고 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남편이었다. 그래서 자식들과도 정겹지 못하다. 아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이란 생각에 아내는 그런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며 돌본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익살스러운 표현 속에서도 남편을 측은히 여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행간에 숨어 있었다.


88세의 고령에 저자의 남편은 대장암 수술까지 받는다. 전신마취 후 섬망증으로 가족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저자는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며, 노쇠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이 바카라은 노년의 삶이 단순히 쇠퇴가 아니라, 또 다른 돌봄과 사랑의 시간임을 보여준다.


"노쇠는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점 전 정류장이다." - p.131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


80대 현역 어르신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봄을 받는 노인에게는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하여 가족이 직접 돌보고 싶어도 장기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다. 그렇기에 국가적 차원의 간호 인력과 슬롯복지사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돌봄을 받는 노인에게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듯,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과 어르신에게도 또 하나의 돌봄이 절실하다. 돌봄은 한쪽의 희생만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슬롯적·제도적 지원이 함께할 때 비로소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이 바카라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고령 슬롯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노년은 종점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정류장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돌보며, 여전히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에 채택된 글: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8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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