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되지 않을 삶
지난 주말 짧은 부산 여행을 갔다. 부산으로 이동 중 시간을 내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는 여러 작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건축사무소 비유에스아키텍츠의 작품이다.
작품명은 <빗물받이>.
외부의 자연을 받아들여 내부의 흐름으로 치환하는 빗물받이라는 설명이다.
빗물받이 홈통은 얼핏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건축물 장치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1차적으로 건물을 보호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다. 지붕으로 무심코 내린 빗물이 홈통을 따라 내려가는 이 과정이 왜 정겹게 보이는 걸까?
'집'을 짓고 있기 때문일까?
특히 단독주택이란 건축물은 홀로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독자적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이 인공물도 물과 소리의 흐름을 이어주며 자연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사실 모든 집들의 빗물받이 홈통은 제각각 위치가 다르고 모양도 색도 다르다.
'내가 짓고 있는 건축물도 자연의 일부로 나만의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무더운 여름.. 눅눅해진 공기 속에서 마음 한편이 으쓱! 쿨한 바람이 부는 거 같다. 거짓 바람인가.. 혼자 시원해진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 나가는 날짜가 확정되었다. 앞으로 두 달 정도 남았다. 여기 아파트를 떠나서 직접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3년 만에 다시 낯선 곳으로 그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생활방식을 '무빙'한다. 마음이 어수선하다.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첫 1주일간 10여 팀이 정신없이 보러 왔다. 이 아파트는 타운하우스 형태의 단지인데 내가 사는 곳은 계단을 올라가면 작고 근사한 다락방이 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메인층인 아파트 구조는 대충 보고 다락방에 올라가 각자만의 로망을 꿈꾸다 아쉬워하며 현실로 내려왔다. 하지만 뜨거운 반응대비 바로 계약은 안 되었다.
어느 날 4살 정도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락방을 올라가서 보고는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라고 떼를 쓰고 내려오지 않고 뒹구는 바람에 한바탕 박장대소 풍경이 펼쳐졌다. 그 부부는 그날 바로 계약서를 썼다.
'아파트에 태어나서 살던 그 아이는 왜 다락방을 보자마자 여기에 홀릭한 걸까?'
다락방이라는 공간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우리의 본능은 신기하다. 감각 속에 어떤 나침반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우리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의외로 많다.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지만..
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에 나오는 글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반시계 방향(왼쪽)으로 돈다고 한다. 출발 자체가 왼쪽 방향을 선호하고 벽을 마주치는 경우에도 대부분 왼쪽으로 피한다.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창간 125주년을 맞아 선정한 '우리가 모르는 미해결 질문 125개'가 있다. 그 안에 '전신 마취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도 포함되어 있다. 마취제가 어떻게 사람의 의식을 꺼뜨리고 다시 켜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과학적 원리와 프로세스를 모른단다.
나도 맹장수술을 받으며 처음 전신마취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떻게 깨어났는지 마취 의사들도 과학적인 작동 원리를 모르고 한다는 이야기다. 마취 전에 쓴 각서가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인생의 정답을 누가 알고 미리 예측하고 살아간다는 말인가.
'이제는 정답이 항상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사 날짜가 정해지니 주변에서 다시 우려를 하며 애정 어린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또 이사 가는가?"
"힘들게 왜 단독주택으로 간다고.."
"아파트가 그래도 돈도 되고 좋을 텐데.."
나도 걱정된다.
사실 집을 짓다 보니 여전히 재테크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집을 짓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재테크라기보다 인생의 구조를 다양한 방면에서 탄탄하게 만들어보기 위한 '인생테크'가 주목적이었다.
재테크 세계도 마찬가지다. 테슬라나 엔비디아 같이 미래 유망주식을 미리 정답같이 찾아내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건 도박에 가깝다. 대신 '분산투자 전략' 즉 자신에게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평생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재테크다.
무엇이 대박 나고 어떤 것이 쪽박 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인생 포트폴리오를 무너지지 않게 버틸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포트폴리오의 핵심은 투자를 여러 가지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자산이 다르게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한다.
남들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 그리고 다양한 방향으로 선택 옵션을 늘려가는 것..
날 것으로 표현하면 의도한 몸부림이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표준화되지 않을 삶'이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