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에도 유용한 제미나이
무심코 제미나이와 나눈 이 대화로 시칠리아 여행이 시작됐다.
사실 이 기간에 이미 계획하고 있던 다른 여행이 있었다. 차를 끌고 서해안을 따라서 진도까지 내려가 솔비치에서 1박을 하고 해남으로 건너가 달마고도를 한 바퀴 걷고, 강진->고흥->남해->통영->거제를 거쳐서 다시 올라오는 열흘 내외의 남해안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국내여행이야 사실 준비할 게 딱히 없었다. 숙소도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남해의 '굼터기'라는 민박을 2박 예약해 놓고, 이전에 라이테 작가님의 글에서 본 강진의 ‘선화네 푸소‘도 한 번 들러봐야겠다 정도가 전부였다.
막상 5월 초가 되어 그래도 숙소는 미리 정해놓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편한 리조트들 보다는 에어비앤비나 민박 위주로 묵고 싶었다. 만약 외국인이 한국에 여행 와서 차를 한 대 빌려 한국 남해안을 따라 여행한다고 했을 때 묵을만한 곳들 위주로 찾아봤다. 민박이나 에어비앤비가 주는 로컬의 경험은 때로는 여행자에게 편안함 이상의 가치를 가지기에, 남해안 렌터카 여행을 계획할 정도라면 리조트보단 좀 더 한국적인 숙소를 선호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에어비앤비들의 가격이 웬만한 고급 리조트 숙박료 따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비쌌다. 그게 결정적으로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미나이가 추천해 준 곳 외에도 여러 여행지를 훑어봤다. 캐나다 밴쿠버로 들어가서 반프 국립공원을 간다던지, 뉴질랜드로 가서 밀포드사운드를 걷는다던지 하는 것들도 후보군에 포함이 됐었다. 그러나 대부분 멀리 가는 곳들은 미-이란 전쟁의 여파로 유류할증료가 말도 못 하게 비쌌다. 비행기 값이 어느 정도 합리적인 키르기스스탄, 요르단, 티베트, 스리랑카 등 내 오랜 버킷리스트는 아내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시칠리아와 북해도를 저울질하며 열흘을 고민만 했다. 시칠리아는 직항이 없었는데 뮌헨을 통해 경유해 가는 편이 여러모로 나아 보였다. 루프트 한자를 이용하게 되면 전쟁 이전에 비해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보였다. 반면, 삿포로에서 시작해서 도야호수를 들러 하코다테까지 북해도 남쪽을 둘러보는 여행은 2주를 쓰기엔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북해도는 아내와 결혼 전 삿포로 눈축제 할 때 이미 함께 여행하기도 했고, 나도 이래저래 북해도를 이미 네다섯번은 다녀온 터라 가 있는 상상을 해봤을 때 크게 설레지 않았다.
결국 간다면 시칠리아를 가고, 아니면 가지 말자는 결론을 내려놓고 비행기를 계속 눈여겨봤다. 비행기 가격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터무니없이 비싸지기도 했고, 너무 괜찮은 가격이 나와서 예약하려 하니 바로 가격이 변동돼서 예약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다 열흘 전인 5.10이 되어서야 비행기 티켓팅을 마쳤다. 당초 열흘로 보던 일정을 이주로 늘리니 괜찮은 가격과 일정이 나왔다. 나와 아내 둘이 총 3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에 인천에서 뮌헨을 경유에 시칠리아까지 가는 왕복 항공권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렌터카 예약이었다. 결혼 전 오지들을 여행할 때에는 캐리어 대신 등에는 큰 배낭을, 앞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하고 다녔다. 두 손이 자유로운 것이 길을 찾을 때도 편하기도 하고, 도보가 울퉁불퉁한 여행지에서 캐리어는 재앙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시칠리아도 찾아보니 도보가 그렇게 매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한 어깨가 아직 온전치 않아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없었기에 캐리어를 끌고 다녀야 했고, 그러면 렌터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시칠리아에서 렌터카를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뭐가 있을까?’
‘시칠리아는 길이 매우 좁기 때문에 중형 이상의 차를 빌리게 되면 좁은 골목은 진입하지 못하는 낭패가 생깁니다. 또한 이탈리아는 ZTL이라고 하는 차량 진입 금지구역이 구도심 곳곳에 있기 때문에 초행길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고액의 벌금통지서가 날아올 수 있습니다. 또한 시칠리아 운전자들은 좋게 이야기하면 ‘창의적’으로 운전을 합니다. 반드시 방어운전을 해야 합니다. 또 이탈리아는 수동방식의 렌터카가 많기 때문에, 예약할 때 자동(매뉴얼) 기어 차량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구구절절이 필요하고 맞는 말이었는데, 당시에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작은 차가 낫겠구나. 자동차량인지 확인을 잘해야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칠리아에서 운전은 난이도 '상'에 해당했다. 운전하며 겪은 에피소드는 후에 찬찬히 쓰려한다.
렌터카까지 예약이 끝난 뒤에는 전체적인 일정을 제미나이와 조율했다. 최초에 제미나이가 추천해 준
여행 일정은 조금 빡빡했다. 길어도 2박 이상 한 장소에서 머물지 않고 2주 동안 시칠리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 모두 그런 여행보단 조금 덜 보더라도 여유를 더 가지는 여행을 선호했기에 유튜브로 선배 시칠리아 여행자들의 영상을 보며 처낼 곳들을 쳐내고 동선을 좀 더 콤팩트하게 줄였다.
전체적인 일정을 세운 후에는 숙소 예약이었다. 에어비앤비나 호텔이 예상보다 꽤 비쌌다. 우리 기준에 너무 터무니없는 숙소는 빼고 그래도 타협한 만한 숙소들은 모두 1박에 최소 15만 원 이상이었다. ‘타오르미나‘ 같은 가장 유명한 여행지는 지하에 있는 원룸형 숙소가 1박에 30만 원이 넘어갔다. 더군다나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 가성비 좋고 평이 좋은 숙소들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제미나이의 추천도 받아서 살펴봤으니 가격이 심하게 차이 나서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가령 1박에 20~30만 원 선이라던 숙소들이 1박에 6~70만 원이었다. 5월 말의 시칠리아는 비수기에 가까웠으나 환율이 문제인 듯싶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코로나 이후 이탈리아 경제가 급속도로 무너지면서, 경제적 부담이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상당 부분 전가된 듯싶었다.
그런 뒤에는 출발 전까지 자잘한 준비들을 마무리했다. 항상 유용했던 볶음김치와 볶음고추장도 챙기고, 국제운전면허증을 경찰서에 가서 발급받고, 유로화를 환전하고, e-sim을 설치했다. 라면도 항상 유용한 아이템이었으나, 가서 거의 매일 파스타를 먹을 건데 면이 또 먹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마지막에 가방에서 빼냈다(돌이켜 보면 챙겼어야 했다)
이탈리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04년이었다. 당시에는 북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위주로 짧게 짧게 패키지여행을 했더랬다. 중학생 때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젤라또랄지 도우가 얇은 나폴리 피자를 처음 먹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지금까지도 선명했다.
더군다나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부엌이라고 불릴 만큼 신선한 해산물과 여러 식재료가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했다. 또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요리의 본고장이라고 할 만큼 전통가 유서가 깊은 곳이란다. 여행에서 잘 먹고 다니는 것이 꽤 중요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여행지인 듯 보였다. 가기 전 백종원을 비롯한 유명 셰프들이 시칠리아 여행을 하며 먹었던 음식과 식당들을 체크했고, ‘시네마천국’. ‘대부‘ 같은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오랜만에 다시 보며 여행에 대한 텐션을 올렸다.
그리고 5.20 나와 아내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20시간이 지나 시칠리아 제2의 도시인 ‘카타니아’ 땅에 드디어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