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하는 시칠리아 여행 - 2

잿더미 속에서 재건된 희망, Catania.

by모블랙
Flower Moon - 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으음.. 몇 시야?"

"아직 여섯 시 밖에 안 됐어. 더 자."

"그럼 이따 나가야 될 때 깨워줘~"


아내가 등을 돌리더니 금세 새근새근 숨소리가 난다. 예민하지 않게 어디서든 잘 자는 사람. 부럽다. 나는 시차 적응에 꽤나 어려움을 겪는 편이니까. 아내는 그냥 시차가 맞을 때까지 자버리는 편이다.


그래 일단 어젯밤 시칠리아에 무사히 도착하긴 했다. 주인이 연락을 받아주어 망정이지 하마터면 길바닥에서 캐리어를 끌어안고 잘 뻔했다.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해 둔 택시기사를 만나 숙소에 도착한 것이 새벽 한 시. 에어비앤비 주인이 일러준 대로 현관문을 열고 3층에 올라갔는데, 우리 숙소처럼 보이는 대문이 없었다. 분명 지도상은 이곳이 맞았는데.. 주인에게 황급히 연락을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왓츠앱에 '읽음'을 나타내는 체크표시 두 개가 겹쳐 뜬다. 주인은 그곳이 아니고 옆 건물이라 알려준다. '다른 건물인데, 어떻게 현관 비밀번호가 똑같았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조용히 거실로 나가 창문을 열어본다. 선선한 아침공기와 함께 약간의 매연이 섞여온다. 건물들은 대체로 어두침침한 색을 띠고 있었다. 흡사 동유럽 공산권 국가를 여행하며 봤던 건물들의 색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벌써부터 오가는 차와 행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이건 시칠리아건 아침은 내 예상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시작된다.


카타니아는 어떤 도시일까?

카타니아라는 이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에트나 옆에(Kata-Aitne)’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중략)


소파에 누워 제미나이로 이 도시에 대해 물어본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대로, 이번에는 여지 것과는 다르게 AI에 대체로 의존해서 여행을 해보기로 한다. 제미나이에 개똥같이 물어봐도 찰떡같이 대답이 술술 나온다.


첫 번째 여행지인 카타니아는 '에트나 옆에'라는 뜻에서 유래한 단어인 만큼, 에트나 화산과 뗄 수 없는 배경을 가진 도시였다. 1669년 에트나 화산의 대폭발로 용암이 도시를 집어삼켰고, 뒤이어 1693년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단다. 그러나 카타니아에 사는 시칠리아 인들은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 용암석을 깎아 도시 전체를 바로크양식으로 재건했단다. 그 까닭에 오래된 건물들이 검은 용암석과 하얀 석회암의 뒤섞인 채 잿빛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카타이아의 잿빛은 구 소련의 건물들의 우울함과는 정 반대로 재건과 희망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카타니아에서의 여행 일정은 단 하루. 카타니아의 명물이라는 수산시장과, 구시가지의 건축들 몇 개를 둘러보고 시칠리아 음식을 먹으면 족하지 싶었다.



구글에 오늘 둘러볼 장소들을 저장하고 있으니 아내가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거실로 나왔다.


"잘 잤어?"

"응,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안 피곤 해?"

"시차 때문에. 배 안 고파?"

"배고파"

"그럼 우리 씻고 일찍 나가자."


8시가 채 안돼 숙소를 나섰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출근길을 따라 걸으며 그들처럼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하며 요기를 채울 목적이었다. 건물을 끼고 있는 골목을 돌자마자 시장의 초입이 나왔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벌써부터 손님을 맞을 준비를 끝내놓은 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사면이 바다인 시칠리아는 지리적인 특성만큼 신선한 해산물과 요리로 유명한 동네이다. 이탈리아 시푸드 요리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명성만큼 새벽에 조업해 아침에 배송된 수산물들이 어지럽게 가판에 흩뿌려져 있었다. 황새치가 많이 잡히는지, 어딜 가나 황새치의 커다란 몸뚱이가 보였다. 자세히 다가가 구경하니 상인은 나에게 "스테이크를 해 먹으면 맛있다"며 구입을 권했다. 순간 혹해서 그럴까 싶었으나 가게의 위생이 구매를 망설이게 했다.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현지인이 요리해 주는 정체 모를 스트릿 푸드도 거리낌 없이 집던 나는, 어느샌가 벌레 하나 없는 백화점이나 마트 진열대에 있는 수산물만 구매할 정도로 까다로워져 있었다.



구불구불한 시장길을 걷다 보니 아직 준비가 안된 곳이 더 많았다. 상인들은 두 발로, 오토바이로, 자전거로 부지런히 하루를 열 준비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 같은 관광객은 그들 입장에선 바쁜데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는지, 발이 엉킬 때마다 뜻 모를 신경질이 되돌아왔다.


시장에 끝에 도달하자 작은 성당이 나왔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입장료를 받지 않아 최고예요"라는 리뷰정도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의 성당. 낡은 외벽과 바로크 양식처럼 보이는 디자인이, 이 교회가 지닌 세월을 알려주는 듯했다. 대지진과 화산폭발 이후에 재건된 건물들 대부분이, 크게 보수공사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세월을 먹어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유럽이라기 보단 중남미 도시들에서 느꼈던 바이브가 도시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시장을 빠져나오니 작은 골목들이 이어졌다. 인기척이 드문 골목 곳곳에는 언제 칠해졌는지 모를 그라피티가 건물마다 뒤덮여 있었다. 보통 건물 외벽이 이렇게 타투를 한 것처럼 지저분하면 그곳은 위험한 장소라는 증거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와 대비되게 땅바닥은 비교적 깔끔했고, 거리는 조용했다. 부유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망가진 곳은 아니겠거니 하는 짐작이 들었다.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는 'Savia'라는 페이스트리 전문점이었다. 1897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성업 중이라는 빵집이라길래, 첫 번째 아침식사 장소로 정했다. 오픈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에 있는 '벨리니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고향인 카타니아에선 그의 이름을 따 구도심 한복판에 공원을 만든 것도 모자라, 그의 대표작 <노르마(Norma)>의 이름을 따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라는 음식도 만들었단다. 카타니아를 여행할 때는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파스타 중 하나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도 여수에 가면 '이순신 광장', '충무공 정식' 등이 있는 것과 비슷하겠지. 음식에까지 이름을 붙일 정도이니, 그가 얼마나 카타니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인지 짐작이 갔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슬러시 같은 음료가 '그라니따(Granita)'이다. 에트나 화산 주변의 비옥한 땅이 최상급의 피스타치오, 아몬드 등의 작물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피스타치오로 만든 그라니따는 매우 고소하고 달았다. 거기에 오렌지맛이 나는 브리오슈를 조금 뜯어 그라니따에 찍어먹으니 달고, 새콤하고, 부드러운 버터향이 입안에서 뒤섞였다. 혈당걱정 따위는 오늘만큼은 뒤로 미뤄둘 만한 완벽한 달콤함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구도심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대성당(두오모)이 나타났다. 유럽을 여행할 때는 일단 대성당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어딜 둘러볼지 정해도 늦지 않았다. 걷는 사람들 중심으로 태어난 유럽의 구도심들이기에, 대성당을 중심으로 볼거들, 살 것들, 먹을 것들이 뭉쳐있었다. 사람이 중심인지, 차가 중심인지에 따라 도시는 그 모습을 달리했다. 대부분 차로 이동해야 하는 미국이나 중동의 국가들과는 달리 유럽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도시의 모습들은 아무리 치안이 안 좋아지고, 유로화가 비싸져도 전 세계인들이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오모 광장 한가운데에는 에트나가 뱉어낸 검은 용암으로 빚어진 코끼리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 등 위에는 뜬금없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그 발치에는 푸른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제미나이를 켜 코끼리 사진을 찍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 코끼리 동상은 뭘까?


카타니아의 심장인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 한가운데 서 있는 코끼리 분수(Fontana dell'Elefante)는 카타니아의 공식 상징입니다. 이 분수의 가장 큰 특징은 코끼리가 ‘검은 용암석(Basalt)’으로 깎였다는 점입니다. 1693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진 후,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바카리니(Giovanni Battista Vaccarini)가 재건을 지휘하면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고독한 코끼리 조각상을 가져와 1736년에 이 아름다운 분수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카타니아 사람들에게 이 코끼리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닙니다. 에트나 화산이 붉은 용암을 뿜어내며 도시를 위협할 때마다, 카타니아 인들은 광장의 검은 코끼리가 그 뜨거운 용암의 흐름을 돌려 도시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대재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주술적이고도 간절한 믿음의 대상인 셈입니다.



두오모에서 발걸음을 옮겨 작은 성문을 지나니 어지럽게 떠드는 상인들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일 아침 열리는 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들을 호객하는 소리는, 마치 야외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바닥에는 생선 핏물과 얼음 녹은 물이 튀고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러나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풍경 속에서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명력 같은 것이 잘 느껴졌다.



이리저리 걷다 보니, 시칠리아 거리의 몇 가지 특징을 짚어낼 수 있었다.


첫째로 차량의 진입이 금지되는 ZTL(Zone Traffic Limited)이 구도심 곳곳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길을 널찍이 써가며 걷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다음으론 차들이 거의 클락션을 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론 신호등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교차로는 회전교차로였고, 사람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등 대신 차가 사람을 발견하면 멀리서부터 무조건 속도를 줄였다. 보행자는 철저히 보호하는데, 차량들끼리는 전혀 양보하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시내를 걷다 보니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군중들이 카메라를 들어 올린 채 환호하고 있었고, 큰 카메라를 들고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방송촬영이 있나? 내가 모르는 이탈리아 연예인이 촬영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가까이 가자 누군가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며 결혼하는 결혼식이라니. 따로 하객을 초대할 필요도 없었겠다 싶었다.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형식적으로 찍어내는 결혼식 대신, 이렇게 결혼을 하면 어떨까. 주인공들은 물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기억에도 오래도록 남을 테니. 서로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만 빼고..



숙소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해 질 무렵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우버기사에게 추천받은 피자집이 공교롭게도 고대 원형 경기장 앞에 있었다. 원형 경기장 주위로 차들이 그곳을 에둘러가며 통행하고 있었고, 입구로 쓰였을법한 웅장한 문은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형 경기장 안에는 라틴어로 쓰인 듯한 글귀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 제미나이에 물어보니,


카타니아의 수호성인인 성 아가타가 남긴 글귀입니다. PER ME CIVITAS CATANENSIUM SUBLIMATUR ACHRISTO라는 문장은 "그리스도에 의해 나를 위해 카타니아 시민들의 도시가 드높여지노라."라는 뜻을 가진 문장입니다. 이 문장에서 "PER ME(나를 통해)"라고 외치는 주인공은 고대 로마의 황제도, 위대한 장군도 아닙니다. 바로 카타니아의 영원한 수호성인이자 세계 3대 가톨릭 순교자 중 한 명인 '성녀 아가타(Saint Agatha)'입니다.

서기 251년, 고대 로마 제국 시기 카타니아의 총독은 아름다운 귀족 처녀 아가타에게 청혼했으나, 그녀는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했습니다. 분노한 총독은 그녀를 감옥에 가두고 유방을 도려내는 등 참혹한 고문을 가한 뒤, 바로 그 카타니아 원형경기장(Amfiteatro Romano)에서 불타는 석탄과 기와 위에 굴리는 형벌을 내려 순교하게 했습니다. 그녀가 경기장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카타니아 전역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 고문 기술자들을 덮쳤고, 겁에 질린 총독은 도망쳤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가 순교한 이듬해 에트나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도시를 집어삼키려 하자, 시민들이 그녀가 남긴 붉은 베일을 들고 맞섰고 용암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고 합니다.

훗날 카타니아 인들은 그녀가 순교한 고대 원형경기장 유적과 도시 곳곳에 이 글귀를 새겼습니다. 즉, "나(성녀 아가타)의 순교와 피를 통해, 우리 카타니아 도시가 그리스도의 축복 안에서 가장 고결하고 위대하게 드높여졌다"는 신앙적 자부심과 회복의 선언입니다.


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경기장 앞 비석에 쓰인 영어 설명을 열심히 읽다가, AI의 잘 정리된 설명을 보니 어쩐지 내 노력이 조금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픈시간이 조금 지나 피제리아에 들어가니, 이미 손님이 절반 이상 차 있었다. 점원은 메뉴판 대신 테이블보에 쓰여있는 QR코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MENU"라고 대답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메뉴를 스캔한 뒤, 이탈리아어로 쓰인 메뉴를 그대로 캡처해 제미나이에 전송해 어떤 메뉴인지 확인했다. 몇 개 추천한 메뉴 중 적당히 독특해 보이는 피자를 한 판 시켜 반으로 나누었고, 채소를 계속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샐러드도 하나 황급히 추가했다. 루꼴라와 연어가 메인인 샐러드는 당혹스럽게도 셀프로 담아먹는 방식으로 나왔고, 귀찮아서 대충 따로따로 집어먹다 말았다. 음식의 맛보다는, 서비스가 심각했다. 주방에서는 손님에게 내어줄 피자가 계속 화덕에서 구워져 나와 쌓여가는데, 서버들이 저들끼리 흥이 올라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느라 손님에게 서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참을성 있는 손님들도 모두 지쳐갈 무렵이 돼서야, 조금 식어버린 피자가 손님들 앞에 배달됐다. 나는 식사를 마친 뒤 서비스에 대해 분노의 장문 리뷰를 남겼고, 그 리뷰는 며칠 사이에 수만 명이 확인하며 '하트' 따위로 도배된 핫리뷰가 되었다.



다음날이 되어 공항으로 돌아가 렌터카를 빌렸다. 목적지인 '시라쿠사‘로 떠나기 전 카타니아의 A부분을 화산처럼 형상화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엔 시칠리아 깃발과, 이탈리아 깃발, EU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시칠리아는 예로부터 외침이 잦은 곳이었다. 이 땅의 주인이 그리스, 노르만족, 아랍(이슬람), 로마, 스페인, 이탈리아로 바뀌어 오는 동안,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호한 '국가'가 아닌 확실한 '가족'을 택해왔다. 그게 이 땅에서 마피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나는 마피아와, 마피아로부터의 해방의 이야기가 궁금해 조금 더 제미나이와 문답을 주고받을까 헀으나, 그냥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어 버렸다. 처음 발을 디딘 시칠리아 땅이었으나, AI와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어쩐지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시시한 기분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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