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초월자(übermensch)’

너 자신이 되는 것, 이것이 초월자의 첫걸음이다.

by김무균

Julius, 7월은 절망과 좌절의 달이었다. “계획은 좌초되고, 추종자들은 죽고, 적들은 그의 피를 달라고 울부짖었다.” 많은 공을 들여 노력했으나,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투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니, 불가항력으로 무너졌다. 기원전 2세기 야니쿨룸의 언덕 밑에서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느꼈던 감정이 이랬을까?


그런 7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맞은 8월의 첫날이었다. 기교가 절망을 낳고, 절망이 다시 기교를 낳듯 절망으로 보낸 7월 이후의 시간 Sextilis, 8월은 새로운 기교를 낳아야만 했다. 오랜만에 인터넷 서점을 방문해 두 권의 바카라을 주문했다. 한 권은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였고, 또 한 권은 ‘니체의 초월자’였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는 지금은 투자가로 더 유명한 개그맨 황현희 씨가 어느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추천한 바카라이었고, ‘니체의 초월자’는 온라인서점 도서 인기 차트를 보고 골랐다. ‘안나 카레니나’ 3권도 함께 구매하려고 하다가 겨우 100여 쪽밖에 읽지 않은 2권이 생각났다. ‘안나 카레니나’ 3권은 다음 구매 목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퇴 후 금융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로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은퇴자의 취업은 쉽지 않았고, 취업을 위한 준비도 특별히 하지 않았다. 30년 경력도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몇 달이면 충분했다. 믿을 것은 그간 모아 놓은 다소의 금융자산뿐이었고, 이제는 그것을 불려 남은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금융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필요했다. 돈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야 했다. 그간 관련된 바카라들을 적잖이 읽었으나, 이 기준이 무너진 시대를 관통하고 통찰하는 지식과 지혜가 더 많이 필요했다. 규칙적이고 고정적인 돈이 힘이 셌고, 모든 것이 먹고사는 문제였다. 이것이 오로지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를 산 이유였다.


‘니체의 초월자’는 순전히 대안이었다. ‘안나 카레니나’ 3권의 구매를 포기하자 배송료가 문제였다. 일정 가격 이하의 한 권 구매에는 별도 배송료가 추가됐다. 배송료를 물지 않기 위해서는 추가로 한 권을 더 사야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도서 인기 차트를 검색하다가 바카라 크기도 작고, 상대적으로 얇기도 한 데다, 요즘 젊은 MZ세대에서 ‘니체’가 인기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이 생각났다(물론, 도서 구매 목록에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수의 바카라들이 있었으나,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 읽고 나서는 아들에게 권해도 될 것 같았고, 자신의 기준을 찾기 위해 요즘 들어 생각이 많은 아들도 분명히 읽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이 ‘니체의 초월자’를 사게 된 이유였다.


토요일 오후 주문한 바카라은 일요일 새벽 아파트 현관문 앞에 신속히 배달되었다. 핸드폰 문자로 배송완료 문자를 확인하고, 내 노후의 일정 부분을 담당할 지식 한 권과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을 치유해 줄 진통제, 혹은 치료제 한 권을 서재 바카라상 위에 올려놓았다. 해도 뜨기 전이었고, 일요일의 새벽이었다.


오랜만에 아침 산행을 다녀왔다. 적어도 1년 내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겨우 8시가 넘었을 뿐인데도 날씨는 푹푹 찌기 시작했고, 간단한 산행임에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산행 후 읽을 바카라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고, 독서 후에는 오랜만에 독서기도 써볼까?, 하며 산행하는 내내 글의 문장들에 대해 몰두했다. 산행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바로 조간 한 부와 새벽에 배달된 바카라 두 권을 들고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주민회의실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집과 달리 빵빵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덕분에 폭염은 먼 나라 일이었고, 내 시원함에 대한 비용은 아파트 공동전기료에 더해져 나오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바카라을 받은 지 사흘째인 8월 4일 오후 2시 8분, 본문으로 꽉 채운 227쪽의 바카라을 모두 읽었다. 내용은 실천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이미 다 아는 이야기였다. 들은 바에 의하면 대화를 할 수 없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이미 아는 자, 두 번째는 알려고 하지 않는 자, 세 번째는 용어를 모르는 자가 그들이다. 나는 이미 아는 자에 속했으니 독서가 집중 될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 독서를 놓지는 않았다. 순전히 내 계획의 일부인 아들에게로의 독서 전이를 위해 사전 독서가 반드시 필요했다. 아들은 ‘이미 아는 자’가 아니었으니, 내용을 알 리 없었고, 글을 쓴 사람은 어쨌든 시대의 대 철학자 니체였다. 편역자는 이 바카라이 니체의 주요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새벽’,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가장 직접적인 통찰을 담은 글들을 엄선해 싣고 있다고 했는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한 줄에 니체 철학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도 했다.


바카라은 좋은 생각들의 백화점이었다. 청년들에게 일독 아니, 재독, 삼독을 권해도 좋을 만했다. 읽는 방법은 하루에 한두 편 정도를 곱씹으며 읽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7개의 비슷한 글들을 읽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긴 했다. 오십 대 이후의 독자들은 굳이 이 바카라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들의 살아온 인생 자체가 이 바카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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