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똥을 따다가 道를 깨닫다.

by김무균

지인이 추석을 맞아 은멸치 한 세트를 선물로 보내왔다. 대충 보기에도 은빛이 선명한 게 좋은 품질의 멸치였다. 그럼에도 마트에서 산 멸치를 다 먹기까지 선물 받은 멸치는 냉장고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했다. 선입선출, 이 또한 멸치의 운명이었다.


추석에 무리를 했는지 아내가 무척 아팠다.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편도가 붓고, 고열과 오한에 시달렸다. 참는 데는 일가견이 있던 아내였으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추석 연휴가 끝나기 전 병원을 찾았다. 처음 찾은 병원(휴일이라 이 병원밖에 문을 열지 않았다.)의 의사는 감기라는 진단명과 함께 감기약을 처방해 주곤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만 듣고 좋아지겠거니 하루를 견뎠으나, 아내의 고통은 더 심해졌다. 이러다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다른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상태를 보니 이 정도면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어떻게 견뎠냐?”는 말과 함께 ‘세균성 편도염’이라는 진단명을 내리고, 처방약에 더해 빠른 회복을 위해 수액 맞기를 권했다. 수액을 맞은 아내가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단잠을 자는 동안 설거지를 마치고 이제 무엇을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 지인이 보내온 멸치가 생각났다. ‘그래 멸치 똥이나 따자!’


하마터면 냉장고에 뿌리를 내릴 뻔한 멸치 한 상자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멸치 상자라고 해봤자 말이 상자지 실은 가로 20cm, 세로 10cm, 높이 3~4cm 정도의 작은 팩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멸치 대가리와 발라낸 똥을 모아 놓을 주방용 냅킨 한 장을 깔고, 다른 한 편에는 대가리와 똥을 발라낸 멸치를 담을 대접 하나를 올려놓았다. 멸치 상자의 뚜껑을 여니 멸치는 크기가 균일하고 은빛의 때깔이 좋은 게 바다 냄새가 났다. 멸치의 대가리를 떼어내고, 배를 가르고, 똥을 발라내고, 대접에 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멸치 똥 따기에 집중하다 보면 거창하게 무념무상의 경지가 찾아온다. 염念은 지나간 생각이고, 상想은 미리 하는 생각인데, 과거의 생각도 없고, 미래의 생각도 없으니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이었다. 과거가 없으니 후회가 없고, 미래가 없으니 걱정 또한 없었다.


잘 건조된 멸치는 허물어지지 않아 대가리가 잘 떼어지고 똥도 잘 발라졌다. 그동안 마트에서 산 멸치는 제대로 건조가 되지 않아 냉장고에서 얼었다가 해동이 되면서 물기가 배어 나왔고, 허물해져서 부서지기 십상이었다. 상자의 멸치가 줄어들수록 냅킨 위로는 멸치 대가리와 멸치 똥으로 만든 산이 높아지고, 대접에는 마른논에 물이 고이듯 멸치가 쌓여갔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경지가 한갓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루고, 티끌이 쌓여 태산을 이룬다.”는 고사성어는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여기 당장 냅킨 위의 멸치 대가리 하나와 대접 속의 멸치 한 마리가 쌓여서 산이 되고 있지 않는가?


멸치의 대가리를 떼어내고, 배를 가르고, 똥을 발라내고, 대접에 담는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는 일과, 우공이 가족들과 큰 산의 흙의 파서 대代를 이어 산을 옮기는 일과, 마라토너가 42.195km를 끊임없이 발을 앞으로 내딛고 팔을 흔드는 동작을 반복하는 일은 어디서 보아도 같은 일이었다. 어쩌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쉬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하나는 이루어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요즘 자주 ‘위례 휴먼링’ 한 바퀴를 걷지 않고 달린다. 약 5km에 달하는 짧지 않은 거리다. 매번 힘들어서 달리기를 멈추고 싶다가도 그럴 때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를 생각했다. 하루키가 ‘도시와 불확실한 벽’ 이후 3년 만에 ‘가호夏帆’라는 소설을 발간했다고 한다.


사족蛇足. 멸치 똥을 따다가 도를 깨닫는 글은 오랜 전부터 쓰려고 했던 글이었으나, 미루고 미루다가 좀체 시작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추석 명절에 지인이 보낸 멸치와 아내의 ‘세균성 편도염’을 기회로 다시 쓰게 됐다. 처음 글을 완성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A4 한 장 분량으로 지금 쓴 글보다 짧았고, 명쾌해서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데 몇 줄 수정과정에서 글 전체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글을 살리려 노력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며칠을 자판의 삭제키를 누른 손가락을 탓하며 상심하다가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사진은 글에서의 묘사처럼 찍지 않아 예전 찍어 놓은 사진(무려 2022년에 11월에 찍은 것이다)을 사용했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음 멸치 똥을 딸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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