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투표해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1994년의 안보 약속, 2014년의 군사적 충격, 그리고 2026년 미국 중간선거가 드러낸 전쟁의 가격표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몰랐던 휴전
2026년 10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즉시 발효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정작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합의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한다면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발표한 휴전을 무조건 거부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가 실제로 동의했는지부터 확인해 달라는 입장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트럼프의 휴전 발표 이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발전시설을 공격했다. 키이우의 발전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았고, 하르키우의 에너지 시설에도 공격이 이어졌다.
러시아 역시 미국이 발표한 합의를 즉각 확인하지 않았다.
이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중순에도 비슷한 에너지 휴전을 발표했지만, 당시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합의를 확인하지 않았고 공격은 계속됐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합의 당사자들이 확인하지 않은 휴전을 미국 대통령이 두 차례나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우크라이나 전선이 아니라 미국의 국내정치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중간선거와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
현재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으로 불안정해진 국제 에너지시장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동의 충돌과 원유·연료 공급 차질은 미국의 디젤 가격에도 부담을 주었다.
문제는 다음 달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실시된다는 사실이다.
물가 상승은 집권당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디젤은 운송업과 농업, 물류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정유시설을 공격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연료 생산과 전쟁 수행능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군사적 목표일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발전시설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생산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상대방의 전쟁 수행비용을 높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계산은 달랐다.
중동전쟁으로 연료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러시아 정유시설까지 공격받으면 국제 연료시장에 추가적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이 미국의 디젤 가격을 끌어올린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미국은 러시아산 디젤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합의를 발표했다. 트럼프가 밝힌 초기 공급 규모는 30만 톤 이상이었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능력을 약화시키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연료를 공급받아 가격을 낮추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행동이 단순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바카라 변경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월 10일,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계속하자 우크라이나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60일 동안 전면적으로 휴전한다면 대통령선거를 조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젤렌스키가 트럼프의 요구 때문에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쟁 중 선거 문제는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발언이 이어진 순서는 중요하다.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군사전략을 비판하고 지도부 교체까지 언급하자,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국제정치의 냉정한 현실을 본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연료가격과 중간선거가 우크라이나의 군사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선거 문제까지 국제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한 나라의 전쟁이 다른 나라의 선거 일정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동맹과 군사지원에 의존하는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가격표일지도 모른다.
안보의 청구서는 1994년에 시작됐을까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2022년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1994년 12월 5일, 우크라이나는 미국·영국·러시아와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했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포기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을 추진했고, 미국·영국·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기존 국경을 존중하겠다는 안보 관련 약속을 제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부다페스트 각서는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하면 미국이나 영국이 자동으로 군사개입에 나선다는 상호방위조약이 아니었다.
안보에 관한 약속은 있었지만, 실제 침공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떤 군사적 수단으로 막을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우크라이나가 과거에 받았던 안보 약속의 실질적인 한계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국가의 안보는 국제슬롯의 선언으로 보장되는가, 아니면 실제로 침공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력과 구체적인 방위 의무로 보장되는가?
이 질문은 대한민국에도 낯설지 않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독자적인 서명 주체가 아니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에 반대했고,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전후 안보 보장을 요구했다.
그해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1954년 발효되었다.
물론 이 조약도 모든 상황에서 미국의 자동 참전을 보장하는 무조건적인 약속은 아니다. 그러나 외부의 무력공격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약상의 의무와 협의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부다페스트 각서와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전후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방위 약속을 조약으로 제도화했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1994년에 받은 약속에는 그에 상응하는 군사개입 의무가 없었다.
두 나라의 역사적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국가의 생존이 걸린 순간, 안보에 관한 선언과 실제 방위 의무가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비교할 가치가 있다.
크림반도를 빼앗긴 뒤 무엇을 준비했는가
2014년 크림반도를 잃은 우크라이나는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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