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경고 앞에서, 한 발명가가 지지를 청하는 이유
태평양의 경고 앞에서, 한 발명가가 지지를 청하는 이유
먼저 밝혀둔다.
이 글은 중립적인 분석 칼럼이 아니다. 내가 설계한 기술을 소개하고, 그 기술에 대한 지지를 청하는 글이다.
나는 이 기술의 특허권자이자 출원인이고, 사업화를 추진하는 이룸홀딩스의 대표다. 따라서 이 글에는 분명한 이해관계가 있다.
그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왜 이 기술을 설계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지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한다.
2026년 10월 8일, 세계기상기구(WMO)는 심상치 않은 전망을 발표했다.
올해 10월부터 12월까지 적도 태평양 중·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약 3.7℃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엘니뇨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의 약 2.6℃였다.
물론 지구 전체의 기온이 3.7℃ 상승한다는 뜻은 아니다. 엘니뇨의 강도를 판단하는 특정 태평양 해역의 수온 편차다.
엘니뇨는 자연현상이다. 인류가 등장하기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망이 던지는 경고를 단순한 자연의 변덕으로 넘길 수는 없다.
엘니뇨는 지구의 대기 순환과 강수 패턴을 변화시킨다. 어떤 지역에서는 가뭄의 위험이 커지고, 다른 지역에서는 홍수와 집중호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농업 생산량이 흔들리면 국제 곡물가격이 영향을 받고, 강수량과 기온이 달라지면 수력발전량과 냉방을 위한 에너지 수요도 변한다.
그런데 지금 인류가 맞이하는 엘니뇨는 과거와 조건이 다르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지구는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변화된 기후환경 위에서 기록적인 엘니뇨가 발생하고 있다.
기후재난의 피해는 단순히 자연이 남긴 상처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죽고, 집이 무너지고, 농경지가 사라진다. 도로와 발전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국가는 예산을 편성하고, 부족하면 돈을 빌린다.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비용은 다른 누군가에게 사용될 수 있었던 자원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최근 네팔의 홍수와 빙하호 붕괴 위험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네팔의 재난이 이번 엘니뇨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후와 환경의 변화가 인간 슬롯에 어떤 비용을 남기는지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한 가지 표현이 불편했다.
'지구를 구해야 한다.'
정말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지구일까?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4천만 년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약 30만 년이다.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는 불과 25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시간에서 인간 문명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지구는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겪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대규모 화산활동, 해양의 산소 부족, 소행성 충돌 등 원인은 달랐다. 그때마다 수많은 생명체가 사라졌고, 생태계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편되었다.
약 6천600만 년 전에는 거대한 소행성 충돌이 비조류 공룡의 시대를 끝냈다.
그러나 지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달라진 환경에서 진화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포유류가 번성했다. 결국 그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도 등장했다.
만약 당시의 대멸종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가 존재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사라지면 지구도 끝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심지어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우리가 건설한 도시와 문명의 유적은 먼 미래까지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구는 고정된 무대가 아니다.
대륙은 움직이고, 해양지각은 섭입하면서 맨틀로 재순환한다. 지표의 암석은 침식되고 새로운 퇴적물이 쌓이며, 일부는 변성작용을 겪는다. 물론 오랜 시간 보존되는 화석과 지질학적 흔적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도시가 수억 년 후에도 인류 문명의 기념비로 남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설령 흔적이 남는다 해도 그것을 발견하고 인류의 문명이라고 이해할 존재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여기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본다.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살아온 생명체가 스스로를 이 행성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
대륙은 움직이고, 바다는 순환하며, 살아남은 생명은 변화한 환경에서 진화를 이어갈 수 있다.
지구의 미래가 반드시 인간의 미래와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기후위기는 엄밀하게 말하면 지구라는 행성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와 수많은 생명체가 지금의 환경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의 대멸종과 지금의 위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과거의 생명체들은 소행성 충돌이나 대규모 화산활동을 예측하고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온실가스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산업활동이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하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한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이미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협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지질학적으로 이미 성립했는지를 둘러싼 논의는 남아 있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이 생물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자신이 초래하는 위험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바로 그 지식이 우리에게 바카라임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로 발전했다.
석탄은 증기기관을 돌렸고, 석유는 자동차와 항공기를 움직였다. 전기는 산업시설과 도시를 밝히고, 화석연료는 세계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얻었다.
그러나 그 발전의 가격표에는 빠진 항목이 있었다.
환경적 비용이다.
기업은 제품을 생산할 때 원료비와 인건비, 설비비를 계산한다. 소비자는 그 비용이 반영된 상품을 구입하고, 국가는 경제활동을 통해 세금을 거둔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태워 대기 중에 배출한 온실가스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남기는 영향을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부담을 외부비용이라고 부른다.
물론 과거에도 일부 환경규제와 오염 방지 비용은 존재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미래 슬롯에 남길 비용까지 제대로 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상품을 사용한 사람들은 풍요를 누렸다.
기업은 이익을 얻었고, 국가는 성장했다.
하지만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의 영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청구서가 지금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세대가 남긴 환경적 부채를 상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그 빚을 갚는 데도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존 발전소를 대체하고, 송전망을 확충하고, 수소 생산과 운송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철강과 시멘트 같은 고온 산업공정도 전환해야 하며, 선박과 항공기의 연료체계도 바꿔야 한다.
물이 부족한 지역에는 담수화와 수자원 확보 시설도 필요하다.
모두가 친환경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가 재정도, 기업의 투자 여력도, 국민의 소득도 무한하지 않다.
특히 기후재난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일수록 정작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위기를 방치하면 더 큰 피해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도 막대한 전환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하는 대신, 그 대응에 필요한 슬롯적 비용의 총액부터 줄일 수는 없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기술적 답을 찾고 싶었다.
먼저 내 구상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부터 이야기하겠다.
열역학 법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에너지를 회수하는 과정에서도 손실은 발생한다. 서로 다른 산업시설을 하나로 연결하면 배관과 저장시설, 제어시스템 등 추가적인 설비비가 필요할 수 있다. 운영과 안전관리도 복잡해진다.
단순히 여러 공정을 연결한다고 해서 전체 에너지 효율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이 구조를 설계한 이유는 하나다.
한 산업에서 버려지는 것이 다른 산업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확보해야 하는 자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례가 산소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가 발생한다.
수소는 에너지원이나 산업 원료로 활용할 수 있지만, 함께 생산된 산소는 적절한 수요처가 없다면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채 배출되기도 한다.
반대로 순산소 연소 발전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연소는 공기 속 산소를 이용하지만, 순산소 연소는 질소가 대부분인 공기 대신 고농도 산소를 공급한다. 탄소를 포함한 연료를 사용할 경우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분리하고 포집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산소를 확보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활용되지 못한 산소가 발생하고, 다른 쪽에서는 산소를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한쪽은 산소를 버리고, 다른 쪽은 산소를 비싸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둘을 연결할 수는 없을까?
물론 단순히 배관 하나로 연결하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필요한 산소의 양과 순도, 공급압력, 생산 시점, 저장과 운송비용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조건이 맞는다면 한 공정의 부산물을 다른 공정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순산소 발전에서 회수한 물과 폐열은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
고온 산업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담수화 시설에 공급할 수는 없을까?
수소 이송배관에서 발생하는 압력 차이를 다른 보조 공정에 활용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이러한 연결을 개별 발명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구조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펜타사이클(Pentacycle)이다.
펜타사이클은 다섯 개의 기술체계를 연결하는 통합 산업 아키텍처다.
첫 번째는 자연 수압과 압력 증폭, 수충전식 피스톤, 농축수 자원회수 기술 등을 연결하는 해수담수화 시스템이다.
두 번째는 수소 안전이송과 차압 에너지 회수, 액화, 공기분리 및 통합 벙커링을 연결하는 수소 인프라다.
세 번째는 순산소 연소와 미스트 분사, 다중유체 복합발전, 물과 폐열 및 이산화탄소 회수를 연결하는 발전 시스템이다.
네 번째는 고온 용융물 제조공정에서 폐열과 탄소를 회수하고 활용하는 산업 시스템이다.
마지막은 이러한 인프라에서 공급되는 자원을 활용하는 선박과 항공 모빌리티다.
나는 이 다섯 개의 기술체계를 중심으로 14건의 특허·출원 기술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했다.
각각의 기술은 개별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한 공정의 산출물이 다른 공정의 투입물이 되도록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친환경 설비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산업들이 서로의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산업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하다.
같은 탄소 감축 목표를 더 적은 슬롯적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
나는 펜타사이클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가능성이 있다면 이미 누군가 검증했어야 하지 않는가?
맞는 질문이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펜타사이클은 아직 특허와 설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기술체계다. 전체 시스템의 통합실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각의 기술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이는지, 통합했을 때 전체 에너지 수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초기 투자비와 유지관리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검증해야 한다.
안전성과 탄소 저감효과도 비교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방식과 비교했을 때 실제로 슬롯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결과가 예상보다 작을 수도 있고, 일부 기술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나는 그 가능성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검증 없이 성공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룸홀딩스는 대규모 연구시설과 실증플랜트를 보유한 기업이 아니다. 특허와 기술설계를 중심으로 사업화를 추진하는 작은 회사다.
내가 가진 것은 설계와 특허 포트폴리오, 그리고 이를 검증받고 싶다는 의지다.
수소 인프라나 발전설비, 고온 산업공정을 시험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을 혼자서 건설할 자본은 없다.
여기에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물은 물 정바카라의 영역이고, 수소는 에너지 정바카라의 영역이다. 발전과 철강산업은 서로 다른 제도와 규제를 적용받고, 선박과 항공 분야까지 연결되면 안전기준과 인증체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펜타사이클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야 하는 기술이다.
각각의 분야에서 개별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을 하나의 산업구조로 연결하려면 서로 다른 기관과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
기술적 가능성을 검증하는 일만큼이나 그 검증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와 협력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나는 지금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내가 청하는 것은 펜타사이클이 옳다고 믿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펜타사이클이 옳은지, 틀렸는지 검증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개별 기술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기업이나 연구기관과 연결되고 싶다.
기존 설비에서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거나 소규모 실증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산업 파트너를 만나고 싶다.
여러 부처와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검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정바카라 담당자의 의견도 듣고 싶다.
무엇보다 이 구조에 기술적 오류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해 줄 전문가들을 만나고 싶다.
좋은 평가만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 알고 싶다.
기술은 반론을 피한다고 발전하지 않는다.
검증을 거쳐야 발전할 수 있다.
하나의 기술이라도 시험할 수 있다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가능성을 판단할 것이다. 성능이 충분하지 않다면 개선해야 할 것이고,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와 실패의 이유조차 다음 연구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거대한 실증플랜트를 건설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각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공유하는 일 역시 하나의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직접 닿지 못하는 곳에 이 구상을 검토할 수 있는 연구자나 기업, 정바카라 담당자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지를 받기 위해 검증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검증을 받기 위해 지지를 청하고 있다.
다시 태평양의 엘니뇨로 돌아가 보자.
인류는 자연현상을 관측하고 예측할 만큼 과학을 발전시켰다.
우리는 과거의 대멸종을 연구하고, 온실가스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까지 계산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를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하지 못한다.
친환경 전환에는 비용이 든다.
지금 투자를 늘리면 현세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진다. 반대로 대응을 미루면 당장의 부담은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세대에게 더 큰 피해와 적응비용을 남길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도 없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사정이 다르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기업과 노동자,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서로 다르다.
결국 이것은 슬롯적 합의의 문제다.
우리는 친환경 전환을 얼마나 빠르게 추진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어느 정도 부담할 것인가.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게 어떤 바카라임을 남길 것인가.
나는 펜타사이클이 이 합의를 조금 덜 고통스럽게 만드는 기술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검증을 거쳐 기존 방식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같은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슬롯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술도 그 결정을 대신 내려줄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풍요를 누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적 부채는 우리 세대가 처음 만든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 세대가 남긴 청구서를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세대에게 새로운 청구서를 남길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나는 펜타사이클이라는 기술을 통해 그 청구서의 총액을 줄일 방법을 찾고 싶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인류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이 초래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연구해 왔다.
그렇다면 인간이 스스로 초래할 수 있는 또 다른 대멸종의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는가?
그 위험을 알고도 외면한다면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과거 세대가 남긴 환경적 부채 가운데 얼마를 오늘 지불할 것인가.
그리고 그중 얼마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게 떠넘길 것인가.
펜타사이클은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한 나의 제안이다.
지구는 인간의 결정을 기다리며 멈춰 있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한 쪽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