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에서 1,300원까지

반도체가 벌어온 달러는 어떻게 국민의 보일러까지 내려오는가

by백진우


1,500원에서 1,300원까지


반도체가 벌어온 달러는 어떻게 국민의 보일러까지 내려오는가

2026년 상반기만 해도 원·달러 환율 1,500원대가 새로운 일상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달러는 강했고, 중동의 불안은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렸다. 한국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달러로 사오는 나라다. 환율이 오르면 국제가격이 그대로여도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원화 가격은 올라간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상황이 달라졌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로 내려왔다.

한국 경제가 몇 달 만에 완전히 바뀐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1,500원을 너무 쉽게 정상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일까?



한국은행은 최근 원화 강세의 원인으로 외국인 주식자금 유출 완화에 따른 외환수급 개선과 미국 달러화 약세를 꼽았다. 8월 통화정바카라 결정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이 이런 요인으로 1,300원대 후반까지 크게 내려왔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고 싶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달러의 양 자체가 달라졌다.

2026년 8월 한국의 수출은 982억5천만 달러, 수입은 635억1천만 달러였다. 한 달 무역흑자만 347억5천만 달러다. 6월부터 세 달 연속 300억 달러가 넘는 흑자가 이어졌고, 1~8월 누적 무역흑자는 2,025억 달러에 달했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8월 반도체 수출은 466억5천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209%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무역흑자 1달러가 모두 즉시 외환시장에 풀리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달러를 보유하기도 하고 해외에 투자하기도 한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수출기업이 달러를 많이 벌어올수록 국내에는 달러 공급 압력이 생긴다. 국내에서 임금과 세금, 투자비를 지급하려면 일정 부분을 원화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벌어온 달러는 기업의 실적표에서 끝나지 않는다. 외환시장으로 내려와 원화의 가격을 바꾼다.



그런데 환율이 1,500원에서 1,300원대로 내려온다는 것은 단순히 해외여행을 싸게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생활에 훨씬 직접적인 물건이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다.

환율이 1,500원에서 1,350원으로 내려가면 같은 1달러짜리 수입품을 사는 데 필요한 원화가 10% 줄어든다. 1,300원이라면 차이는 약 13%까지 벌어진다.

국제 LNG 가격이 그대로라는 단순한 가정 아래에서는 그만큼 원화로 환산한 도입비용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가스요금과도 직접 연결된다.

한국가스공사의 도시가스 원료비 산정식에는 국제 유가뿐 아니라 추정환율이 직접 들어간다. 민수용 도시가스 원료비는 2개월마다 산정되고, 적용 환율 역시 일정 기간의 평균 환율을 사용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요금조정을 유보할 수도 있다.

그러니 가을의 환율은 겨울 난방비와 무관한 숫자가 아니다.

환율은 수출기업의 숫자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오면 국민의 보일러까지 내려오는 숫자다.

물론 환율이 10% 내려갔다고 도시가스요금이 10% 내려간다는 뜻은 아니다. LNG 자체의 국제가격이 오르면 환율 효과를 상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원화 강세는 적어도 가스요금이 올라가야 할 압력을 줄여준다.



이 지점에서 한국가스공사의 장부를 볼 필요가 있다.

2025년 말 기준 민수용 도시가스 원료비 미수금은 약 13조8,649억 원이다. 그 미수금에서 발생한 금융비용만 2025년 약 4,799억 원으로 집계됐다.

공기업이라고 영원히 원가보다 싼 가격에 가스를 공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겨울 한복판에 난방비를 크게 올리면 국민이 받는 충격은 매우 크다.

그래서 에너지 가격에는 ‘얼마를 올릴 것인가’만큼 언제 올릴 것인가가 중요하다.

실제로 2024년에도 민수용 도시가스 도매요금은 2023년 5월 인상 이후 장기간 동결됐다가 난방 수요가 낮은 8월에 주택용 기준 6.8% 인상됐다. 당시 가스공사는 국민 부담을 고려하면서도 누적된 재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LNG 수입에 적용되는 관세도 기본 3%에서 0% 할당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기간은 7월부터 12월까지다.

환율 하락과 관세 인하가 겨울을 앞두고 같은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겨울 가스비를 낮추려고 원·달러 환율을 1,300원대로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 증거는 없다.

하지만 시장이 만들어준 원화 강세를 정부가 굳이 거슬러야 할 이유가 적은 계절이라는 해석은 가능하다.



여기에 금리를 넣으면 그림이 더 재미있어진다.

한국은행은 2025년 5월 기준금리를 2.50%까지 낮춰 놓았다. 그러다 올해 7월 2.75%, 8월에는 3.00%로 두 차례 연속 인상했다. 한국은행은 강한 수출과 내수 회복, 목표를 웃도는 물가뿐 아니라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같은 금융안정 위험까지 이유로 들었다.

한국에서 금리를 다루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가진 가구의 이자부담도 올라간다.

가스비가 10만 원 늘어도 한 가구가 소비할 돈은 10만 원 줄어든다.

대출이자가 10만 원 늘어도 마찬가지다.

가계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통계지만, 통장을 빠져나가는 돈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렇다면 물가를 잡기 위해 모든 부담을 기준금리 하나에 실을 필요가 있을까?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바카라을 보면 또 하나의 단서가 보인다.

금융당국은 수도권 부동산을 겨냥해 LTV와 DSR, 주택가격별 주택담보대출 한도 등 투기적 대출규제를 유지하면서, 주택공급이나 청년·실수요자에게 필요한 금융은 별도로 공급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8월 가계대출도 전체 증가폭은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계속 증가했고, 금융당국은 총량관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금리를 모든 문제에 사용하는 대신 정바카라의 통로를 나누는 것이다.

부동산에는 대출규제를 사용한다.

물가에는 금리를 사용한다.

수입물가에는 환율이 작동한다.

공공요금은 시기를 조절한다.

그리고 정바카라당국이 결국 마주하는 것은 하나의 가계다.



여기에서 국민소득을 한번 들여다보자.

202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5,257만 원으로 전년보다 4.6% 증가했다. 숫자만 보면 국민은 분명 더 부유해졌다.

그러나 같은 해 소비자물가는 2.1% 올랐다.

명목 국민소득 증가율에 물가를 단순 적용해 구매력 변화를 계산하면,

4.6%가 아니라 약 **2.4%**가 남는다.

정확하게는 약 2.45%다.

그런데 달러로 환산한 1인당 GNI 증가율은 더 극적이다.

5,257만 원은 늘었지만 달러 기준 1인당 GNI는 36,963달러로 전년 대비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득은 늘었다.

하지만 물가가 상당 부분을 가져갔고, 높은 환율은 국제적으로 환산한 소득 증가분을 거의 없애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1인당 GNI는 가구가 실제로 받는 월급과 같은 숫자가 아니다. 기업소득까지 포함된 국민경제 전체의 지표다.

실제 가계에서는 체감이 더 약할 수도 있다. 2025년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명목으로 2.1% 증가했지만 **실질소득 증가율은 0.0%**였다.

그래서 국민소득이 늘었다는 뉴스와 “내 생활은 나아진 게 없다”는 국민의 느낌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그런데 2026년에는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분기 실질 GDP는 전년 동기 대비 3.8% 성장했는데, 실질 GNI는 무려 13.2% 증가했다. 2분기에도 실질 GNI는 전분기보다 3.1% 늘었다.

왜 생산보다 소득이 더 빨리 늘었을까?

반도체 수출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한국이 수출품을 팔아 받아올 수 있는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역시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명목소득 확대를 주요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한국은 단순히 반도체를 더 많이 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수출로 더 많은 해외의 물건과 에너지를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교역조건이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원화까지 강해지면 효과는 한 번 더 발생한다.

반도체가 달러를 벌어온다.

무역흑자가 커진다.

달러 공급이 늘어난다.

원화 가치가 오른다.

원유와 LNG를 사오는 원화 비용이 낮아진다.

수입물가가 안정된다.

가스비와 생활물가의 상승압력이 줄어든다.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개선된다.

그리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더 과격하게 올려야 할 필요도 일부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 지금 내가 1,300원대 환율을 흥미롭게 보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현재 환율을 단순히 “원화가 강해졌다”라고만 설명하고 싶지 않다.

2026년 상반기에는 1달러에 1,500원이 새로운 정상처럼 보였다.

그런데 몇 달 만에 1,300원대로 돌아왔다.

그 사이 반도체는 기록적인 달러를 벌어왔고, 무역흑자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커졌다.

그리고 하필 지금은 겨울을 앞둔 시기다.

한국은 LNG와 원유를 대량으로 수입해야 한다.

가스공사에는 13조 원이 넘는 미수금이 남아 있다.

국민에게 가스요금을 계속 묶어둘 수도 없지만, 겨울 한복판에 크게 올리기도 어렵다.

금리를 더 올리면 물가는 잡을 수 있지만 가계대출 이자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다시 부동산과 가계대출이 문제다.

그러니 부동산은 대출규제로 누르고, 물가에는 금리를 사용하고, 원화 강세가 만들어주는 수입물가 하락 효과를 받아들이며, 공공요금은 계절을 보면서 움직이는 정바카라조합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환율을 1,300원대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300원대가 정부에게 매우 유용한 환율이라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반도체가 벌어온 달러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에서 끝나지 않는다.

외환시장으로 들어간다.

환율을 움직인다.

원유와 LNG의 원화 가격을 바꾼다.

물가를 움직인다.

겨울철 보일러를 지나고,

대출이자와 소비를 거쳐,

마지막에는 한 가구의 통장에 남는 돈을 바꾼다.

그래서 어쩌면 정부가 정말 관리하려는 숫자는 환율 1,300원도, 기준금리 3%도, 도시가스요금도 아닐지 모른다.

그 모든 숫자가 마지막에 만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물가와 이자와 주거비를 모두 내고 난 뒤, 국민에게 실제로 얼마가 남는가?

경제정바카라이 결국 지켜야 할 숫자는

가계의 실질소득과 구매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