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물리학
남자는 왜 서서 소변을 보는가.
본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2,500년 전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여행하고 돌아와 이상한 기록을 남긴다.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서서 소변을 보고, 남자들이 앉아서 본다는 것이다. 그는 이집트 사람들이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모든 것을 거꾸로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본능이라기보다 몸의 구조가 허락하는 방식이고, 그것을 택하게 하는 것은 문화다. 수컷 개도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들지 않는다. 사춘기 무렵이 되어서야 한쪽 다리를 높이 들고 영역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남자아이들도 처음에는 앉아서, 혹은 어정쩡하게 서서 배운다. 그리고 부모에게 마지막 몇 방울을 터는 법까지 배워야 비로소 바지를 적시지 않게 된다.
문제는 그 몇 방울이다.
2013년,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물리학자 태드 트러스콧과 랜디 허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한다. 그들은 사람의 요도를 본뜬 장치로 색깔 물을 쏘아 변기에 부딪히게 하고,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물줄기는 떨어지는 동안 작은 방울들로 쪼개지고, 그 방울들이 변기에 부딪히는 순간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변기에서 꽤 떨어진 바닥과 벽,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의 바지와 신발에까지.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다. 가까이 서고, 낮게 조준하고, 비스듬히 맞혀라.
결혼한 여성들이 오랫동안 화장실 바닥을 보며 품었던 의심이, 물리학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이 문제를 법정까지 가져갔다. 2015년, 뒤셀도르프의 한 집주인은 세입자가 서서 소변을 보는 바람에 욕실의 대리석 바닥이 상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판사는 세입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여전히 널리 퍼진 관습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에는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자를 부르는 〈지츠핀클러〉라는 말이 따로 있다. 놀림조로 쓰이던 이 말은 요즘은 배려 깊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집에서는 앉아서 보는 남자가 점점 늘고 있다.
세계의 화장실은 저마다 다르다. 고대 로마의 공중화장실에는 칸막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긴 돌 의자에 나란히 앉아 볼일을 보며 수다를 떨었고, 막대 끝에 매단 해면 하나를 함께 썼다.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는 2층 창문에서 요강을 길거리로 비우곤 했다. 지나가는 사람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경고의 외침에 재빨리 몸을 피해야 했다. 오늘날 일본의 변기는 엉덩이를 데워 주고, 물을 뿜어 씻어 주고, 소리가 민망한 사람을 위해 물 흐르는 소리까지 들려준다. 아시아와 중동의 많은 곳에서는 쭈그려 앉는 변기를 쓰는데, 의사들은 이 자세가 오히려 장에 더 자연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의 수억 명은 화장실 없이 살아간다. 유엔은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해마다 11월 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정했다.
그렇다면 튀는 몇 방울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1990년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은 남자 화장실 바닥이 늘 젖어 있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청소 바카라임자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소변기 안쪽, 배수구 바로 옆에 작은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은 것이다. 남자들은 화장실에 들어서면 본능처럼 그 파리를 겨냥했다. 바닥에 튀는 소변이 크게 줄었고, 청소비도 줄었다. 이 파리는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의 바카라에 실리며, 사람의 행동을 슬쩍 바꾸는 〈넛지〉의 상징이 된다. 강요하지 않고, 겨냥할 곳을 주었을 뿐이다.
그 뒤로도 인간은 조금씩 나아졌다. 브리검 영 대학의 연구진은 훗날 소용돌이치는 조개껍데기 모양의 소변기를 고안해, 물줄기가 벽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거의 튀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사람마다 키가 다르다는 것이다. 키가 큰 사람에게는 소변기가 너무 낮고, 아이에게는 너무 높다. 높이가 맞지 않으면 물줄기는 더 멀리 떨어지고, 더 많이 튄다. 다가서는 사람의 키를 알아보고 스스로 높이를 맞추는 소변기가 있다면 어떨까. 자동문이 열리고, 조명이 켜지고, 물이 저절로 내려가는 시대에, 이것 하나만은 아직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변기 밖으로 튀는 몇 방울은 아직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음 위대한 발명은 화장실에서 나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