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전 금지
퇴근해서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댄다.
자리에 반듯하게 넣고 기어를 P에 둔다. 그런데 시동을 끄지 않는다. 안전벨트도 풀지 않은 채로 앉아 있다.
올라가면 저녁을 차려야 하고, 밀린 연락에 답해야 하고, 내일 가져갈 것도 챙겨야 한다. 그 전에 잠깐만 이렇게 있고 싶다.
십 분쯤 그러고 있다가 문득 앞을 본다.
기둥에 표지판이 붙어 있다.
공회전 금지
매일 보던 글자다. 그런데 오늘은 그 네 글자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나는 지금 쉬고 있는 걸까.
공회전은 이상한 상태다.
차는 서 있다. 바퀴는 한 바퀴도 구르지 않는다. 밖에서 보면 주차된 차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안에서는 엔진이 돌고 있다. 계기판 바늘은 0에 내려가 있지 않고, 연료는 조금씩 줄고, 배기구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나온다.
움직이지 않는데 멈춘 것도 아니다.
공회전이 하는 일은 하나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기어만 넣으면 바로 나갈 수 있다. 시동을 다시 걸 필요가 없다. 그 몇 초를 아끼려고 엔진을 계속 돌려두는 것이다.
그러니 공회전은 쉬는 상태가 아니다.
대기하는 상태다.
이 이야기가 차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건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쉬는 날을 떠올려보면 된다.
어제는 월요일이었는데 쉬는 날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났고, 딱히 한 일도 없다. 소파에 누워 있었고, 화면을 넘겼고, 낮잠을 조금 잤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 가볍지 않다. 하루를 통째로 쉬었는데 몸이 풀린 느낌이 없다.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면 한 일은 없다. 그런데 꺼둔 것도 없다.
휴대폰 알림은 켜져 있었다. 업무 메신저는 읽지 않았지만 숫자가 올라가는 것은 보고 있었다. 누워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번 주에 처리할 일의 순서를 한 번씩 돌려봤다. 누가 연락하면 바로 답할 수 있는 상태였다.
몸은 소파에 있었지만 시동은 켜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가 분명해진다.
쉬는 것과 대기하는 것은 다르다.
쉬는 것은 시동을 끈 상태다. 누가 불러도 바로 출발하지 못한다. 그 대신 엔진이 식는다.
대기하는 것은 시동을 켠 채 서 있는 상태다. 부르면 바로 나갈 수 있다. 그 대신 엔진은 계속 돈다.
겉모습은 같다. 둘 다 누워 있고,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기한 하루를 쉰 하루로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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