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은 이유

낭만적인 환상을 깨고, 내 안의 진짜 욕구를 읽어내는 법

1. 투자 대비 수익률과 냉정한 기회비용


유학은 돈과 시간,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와 스트레스가 집약되는 초대형 투자다. 장학금을 받는 행운이 따른다 해도 현지 생활비와 언어 습득에 들어가는 비용, 타지에서 겪는 유무형의 스트레스까지 고려하면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나는 내가 지불해야 할 이 거대한 기회비용을 과연 미래의 내가 회수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들겨 보았다. 이미 유학을 다녀온 지 10년 이상된 선배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유학파라는 타이틀이 예체능에서는 곧바로 안정적인 경제활동이나 원하는 자리(교수 임용이나 전임 연주자 등)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을 확인했다. 시간강사로 정착하더라도 치열한 경쟁과 팍팍한 처우를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한 비용과 시간 대비 내가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과 삶의 안정성이 불확실하다면, 적어도 나에게 유학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치를 기회비용을 뛰어넘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남들이 가니까 따라 떠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라고 판단했다.



2.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나라는 사람의 기질


유학을 통해 뛰어난 음악적 성취를 이루고 현지에 정착하거나 국내외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동료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하지만 내 기질을 냉정하게 돌이켜보았을 때, 나는 타국에서 모든 일상을 오롯이 홀로 버텨내야 하는 극심한 외로움을 견딜 만큼 독립적인 사람이 못 되었다.


게다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절벽으로 인해 국내 클래식 및 예술 교육 시장, 그리고 관련 일자리는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제는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으로 돌아와 교직이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이 이전 시대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워졌다.


그렇기에 지금의 유학은 단순히 몇 년 공부하고 돌아오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 나라에 정착하여 이민자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로 확장되곤 한다. 주변에서 유학을 통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케이스 역시, 학위만 따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완전히 흡수하여 그 슬롯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에게는 낯선 땅에서 오롯이 혼자 버티며 살아남을 자신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내의 문을 뚫거나 아예 타국에 정착해 살아갈 각오도 부족했다. 내 기질과 다가올 현실을 솔직하게 비교해 보았을 때, 유학은 나라는 사람에게 맞는 옷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3. 내가 진짜 원했던 것과 유학이라는 환상


사실 대학 시절부터 내 안에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남들이 가는 익숙한 전공자의 길에 온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했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전공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예술 외부의 활동들에 더 깊이 몰두하곤 했다.


그럼에도 전공자로서의 미련이 남아 음악 유학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대학 재학 중 미국 음악 캠프를 두 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현지 음대의 모습은 내 안의 막연한 환상을 깨뜨려주었다. 클래식 전공자의 대부분이 아시안 유학생들로 채워져 있었고, 내가 상상했던 외국에서의 압도적이고 특별한 배움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이 경험은 역설적으로 유학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학부를 마치고 나자, 당시 나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해외 음대의 학위가 아니라 내 내면을 채워줄 심리와 영성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라는 점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래서 나는 남들처럼 유학길에 오르는 대신, 그 진짜 욕구를 따라 인도의 요가학교로 떠나 배움을 얻었다.


해외를 경험하고 싶다는 내 안의 단순한 욕구 역시, 굳이 몇 년의 유학과 학위 과정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여행을 통해 얼마든지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유학을 고민할 때 진짜 물어야 할 것은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다. 예술적 깊이인가, 학위인가, 부모로부터의 독립인가, 아니면 국내에서 마땅한 길을 찾지 못해 선택한 잠시 동안의 도피인가? 내 안의 진짜 욕구를 명확히 알아야 남들의 기준이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4.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만의 판을 짜다


결국 나는 국내에 남아 내 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학부를 마친 뒤 고향으로 내려가 1년 동안 입시 강사로 일하며 현장의 생리를 익혔다. 시장의 흐름을 읽다 보니 내 기술과 역량으로 충분히 승산을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곧바로 나만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내 사업장을 운영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내는 진짜 자립을 이루자, 놀랍게도 그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회와 경제활동의 루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교나 유학이라는 안전지대 안에 있을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진짜 세상의 일들이, 필드에 나와 플레이어로 뛰기 시작하면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경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는 인생의 골든타임에 거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유학을 다녀온 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일찍 시장에 뛰어들어 나만의 기반을 잡고 수입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남들이 타지에서 학위에 비용을 치르는 동안, 나는 이미 시장에서 내 손으로 수입을 만들고 자산을 쌓으며 자립의 체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스펙보다 훨씬 강력한 것은 시장에서 내 힘으로 자립해 본 실전 경험과 경제적 체력이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먼저 나만의 판을 짜고 필드에 일찍 뛰어들었더니, 타인의 시선이나 타이틀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 내 삶을 주도하는 경제적, 정신적 어른이 될 수 있었다.



Caspar David Friedrich,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7), Public Domain.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4가지 질문

나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견디고 정착할 만큼 독립적인 기질을 가졌는가?

내가 투자할 시간과 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가치를 계산해 보았는가?

내가 진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먼저 나만의 일거리와 판을 만들어볼 수는 없는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