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진짜’는 과연 무엇일까 (2)

[바카라 리뷰] 혼모노, 성해나 (창비)

by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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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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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에는 수많은 불쏘시개가 필요한 법이었다. ...(중략)... 그러니 어떤 이들은 욕망의 불구덩이에 온갖 쏘시개를 던져넣다 스스로 땔감이 되기도 하는 것 아니겠나.


네 번째 단편은 ‘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다. 시대적 배경이 인상적이다. 이 단편은 유신 시절 고문실을 설계한 건축가들의 이야기다. 야망 넘치고 세속적이나 마음 저변에 인간을 위한 건축에 대해 갈등하던 사람과 합리적, 효율적인 태도로 인간을 위한 건축을 염원하면서도 최적의 고문실을 설계했던 사람이 등장한다.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하자.


문장 그 자체는 바람직한 명제다. 그러나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 때도 이 명제가 성립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머리가 절로 지끈거리게 되는 철학의 심연에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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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다는 건 무엇인가. 거대한 권력에 납작 엎드려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건축을 하는 행위가 애초에 인간을 위한 건축이 될 수 있을까.


자네는 아직도 그곳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나?

물음에 대한 답을 헤아리며 구보승은 멀거니 서 있었다. 인간을 위한 공간, 설계할 때만 해도 확신했으나 막상 도면이 완성되고 시공에 들어가자 모든 확신이 모호해졌다. 자신이 치밀하게 설계한 것들이 무얼 위함이었는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어졌다.


단편 속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연스레 질문하게 된다. 고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그 악행이 벌어지는 무대가 되는 공간, 최적의 고문실을 구상하고 설계한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는가. 그저 윗사람의 명령과 시대의 억압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 또한 죄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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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을 논한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가 삶에서 행하는 일들은 크고 작은 반향으로 슬롯에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의식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덤덤함이, 한 치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평범함이 우리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 수도 있다. 그렇게 작가는 안일함 속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서늘한 경고를 날린다.





우호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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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다섯 번째 단편은 ‘우호적 감정’이다. 한 스타트업에 다니는 다양한 연령대 직원들의 인간관계를 다룬다. 단편 제목 ‘우호적 감정’을 보면 알 수 있듯, 슬롯에 존재하는 찰나의 우호적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려낸다.


가족 같았던 마을 사람들도, 우호적인 감정을 지녔던 온라인 게임 동료도 모두 ‘돈’을 매개로 사이가 어그러진다. 배금주의가 만연한 슬롯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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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삶에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건 안다. 사랑, 우정, 평화, 연대, 건강, 행복 등등. 인간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가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정작 나만 해도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복권을 구매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슬롯 풍조에 완전히 동조하지도, 그렇다고 이건 아니라고 반감을 제기하지도 않은 채 그냥저냥 어영부영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소설 말미 뜨거운 딤섬을 뱉지도, 그렇다고 삼키지도 못하는 주인공 모습에서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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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주 이골이 나요.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속은 다 썩어 있어요.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려 애쓰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등 아직 슬롯적 때가 덜 탄 주인공의 시선에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일까. 사람들 사이에서 우호적 감정이 스러지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을 배로 불러일으킨다.


과연 우호적 관계는 등장인물 말대로 환상에 불과할까. 서로 다른 세대와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느슨한 연대로 묶였던 소설 속 찰나의 순간들이 생각난다.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 우연찮게 서로 엮여드는 순간이 내게 준 은은한 미소를 기억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아스팔트 사이 한 줌의 흙 속에서 피어난 들꽃과도 같은 희망이 남아있는 것 아닐까.


우리 삶의 귀중한 관계와 가치들이 물질만능주의에 전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면 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아마 작가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작가가 펼쳐 보인 삶의 단면들이 자그마한 깨달음으로 다가와 우리들의 삶에 작은 파문을 만들어 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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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기


석 달만 지나면 서진은 잘 짜인 절차와 수속을 밟고 괌으로 출산하러 갈 것이다. 내가 깔아둔 매끈하고 부드러운 판에 그 애는 무사히 안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연스럽고 기껍게.


여섯 번째 단편은 ‘잉태기’다. 부자들 삶의 일면을 몰래 엿본 듯했다. 임신한 자식을 원정출산을 보내려는 모친과 원정출산을 반대하는 조부모와의 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이 누리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판을 언뜻 보면 부럽다. 백화점을 제집 드나들듯 다니며 원하는 물건을 턱턱 사고, 돈 걱정 없이 호화스러운 삶을 누리는 모습이 못내 질투가 난다. 슬롯에서는 어떤가. 편법을 써가며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며 자신의 부를 대물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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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을 빌려와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주인공처럼, 주인공의 시부처럼, 주인공의 딸처럼 살고 싶은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거세게 도리질을 칠 것이다.


저들의 삶을 본받고 싶진 않다. 돈이 많아도 저렇게 산다면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겠다 싶다. 시부와 며느리의 갈등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시종일관 눈살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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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 딸을 내지는 손녀를 자신의 입맛대로 조종하고 휘두르는 모습이 거북하다 못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금으로 만든 철창 속에 갇힌 리본 매단 새가 절로 상상된다.


새의 주인은 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새의 시야와 행동을 차단하고 자유를 억압한다. 새는 당장 눈앞의 고급 사료와 금으로 두른 보금자리에 눈이 멀어 드넓은 창공과 하늘을 나는 자유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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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돈이 많다고 전부 이 소설 속 가족들 같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부’가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우리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이 주는 유혹에 취해 우리가 가진 저열한 욕망을 드러내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돈이 적은 사람이든 내가 가진 잣대에 매몰돼 남을 그 안에 집어넣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서로 다른 생김새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성과 인격을 가진 우리다.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별함을 서로 존중하며 살 수 있는 슬롯가 되기를 바라본다.






메탈


청춘의 가장 푸른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도 될까.


마지막 단편은 ‘메탈’이다. 지나가 버린 청춘의 아련함이 남아있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지난날들에 대한 향수(鄕愁)가 있다. 과거 친구들과의 우정, 지나간 사랑에 대한 추억 등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릿해지는 순간들 하나씩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다.


주인공에게는 그게 바로 ‘메탈’이었다. 세 친구의 우정을 이어주며 빛나는 청춘이 한데 모여 몰입할 수 있었던 매개체였다. 그 시절 우리는 낭만이 있었고 희망이 가득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세상 그 무엇도 우스워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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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것이라곤 희미한 전조등과 친구들의 웃음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달리면 우림은 더 나아질 것도 망할 것도 없는 현실에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만 같았다.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꿈을 영원히 꿀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나이를 먹고 현실을 알게 되며 우리들은 점차 시시한 어른으로 자란다.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과 현실만이 자리한다. 각자 겪게 되는 경험과 관계가 달라짐에 따라 한때 인생의 전부였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점차 소원해진다. 씁쓸함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절로 공감이 간다.


빛바랜 꿈들과 쳇바퀴 같은 일상의 단면들 사이 우리는 그럼에도 과거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어른이 된 주인공은 자신의 한 시절이 담긴 메탈 노래 CD를 끝까지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 무엇도 주인공에게서 청춘의 추억을 앗아가진 못한다. 추억은 진득하니 삶에 남아 이제는 관계가 멀어진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고,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에 녹아들어 슬롯의 냉기에 지쳤던 마음을 덥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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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의 작가의 경우, 삶에 존재하는 불편한 구석들을 집어내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모든 단편에서는 인간관계든 삶의 형태든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군상들이 등장한다. 우리 삶에 당연히 존재하나 흐린 눈으로 넘겨보던 삶의 거북함을 활자로 그려낸다.


물론 그 거북함이 바카라의 호불호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읽는 내내 시종일관 나의 마음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통에 어느 순간부터는 바카라 자체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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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무릇 바카라이란 독자의 마음에 무언가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혼모노>는 나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킨 바카라이다. 우리 삶의 ‘혼모노(진짜)’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바카라이다.


우리 삶의 진짜를 비추고자 치열한 사투를 벌인 작가님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느낀 거북함이 ‘진짜’ 나의 삶에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환기되기를, 거북함보다 산뜩함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midjourney

인용 출처 :『혼모노』성해나, 창비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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