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리뷰] 혼모노, 성해나 (창비)
혼모노. 제목을 읽었다. 뜻을 모르는 단어다. 일본어 같긴 한데 일반인들이 알 법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사전을 찾아봤다.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진짜’라는 의미.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며 덕질하는 일부 오타쿠를 지칭하는 단어. 이 바카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호기심을 품은 채 바카라장을 펼쳤다.
바카라 <혼모노>는 단편 '혼모노'를 포함한 총 7편의 단편을 수록한 소설집이었다. 각각의 단편들은 주인공도 상황도 이야기하는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할 뿐이다.
이 소설들을 쓴 작가는 감정이 매우 섬세한 사람이지 않을까 느낀다. 삶에서 겪는 묘하게 불쾌하고 거북한 지점들을 핀셋으로 예리하게 집어 활자로 풀어낸다. 우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흘려 보내왔던 미세한 신호들을 직면한다.
바카라을 덮고 표지를 멍하니 바라본다. 바카라 표지의 사과가 무수한 상징의 의미로 다가온다.
저 사과는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해주었던 금단의 열매, 선악과일까. 뉴턴이 보고 중력에 대한 성찰을 얻게 만든, 깨달음의 사과일까. 과일 '사과'와 동음이의어이자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지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사과(謝過)'라는 행위를 의미할까.
그렇게 사과를 바라보며 읽었던 단편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반추한다. 어쩌면 그 모든 상징을 담았을 수도, 그저 아닐 수도 있으리라 짐작하며 각각의 단편을 헤아려 본다.
첫 번째 단편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다. 제목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죄의식과 쾌감, 그 어딘가를 헤매는 인간 마음의 어중간함을 표현한 소설이었다. 즉, ‘길티 플레져’의 소설화 형태였다.
인간에 의해 이빨과 발톱이 모두 빠진 채 동물원에서 하루하루 축낼 뿐인 호랑이 한 마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호랑이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러나 과연 그뿐일까. 꽤 큰 돈을 내고 ‘호랑이 만지기’ 관광상품을 체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마음 한구석의 죄바카라감을 모른 척 덮어버린다.
나는 그저 값을 치른 합당한 손님이며,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라 관점을 전환한다. 그렇게 이빨 빠진 호랑이의 털을 쓸며 자신의 손끝 감각과 순간의 도파민에 정신을 집중한다.
호랑이가 불편한 듯 근육을 움찔댈 때마다 척추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었다.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단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는 사람들이 지닌 죄의식의 변모 과정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누구에게나 죄의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죄의식을 하나하나 짊어지고 살기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하다. 신경 쓸 일들이 넘쳐난다.
그렇게 현대인들은 죄의식을 시간에 흘려보내며 희석하고 옅게 만든다.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위해, 요동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무르길 바라는 우리들의 감정을 위해, 죄의식은 점점 흐려지고 사라져 간다.
물론 1차원적인 잘못은 호랑이의 야생성을 제거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써먹은 인간들일 테다. 어린아이를 꼬집고 학대한 감독일 테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판치고 있는 건 그 사람들을 동조하며, 적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며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자세한 사실관계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내가 느끼는 감각과 경험, 내 삶의 평온과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흐린 눈으로 못 본 척 넘기던 사건들이 목에 대롱대롱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내 마음을 불편하게 옥죈다.
한국은 이런 나라구나.
예상과 달리 이곳은 위험하거나 두려운 우범지대가 아니었다.
두 번째 단편은 ‘스무드’다. 소재가 특이했다. 태극기 부대와 한국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 그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있을 법하면서도 한편으로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수학 공식도 하나 떠올랐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가 되는 공식, 그 공식이 마치 그들의 관계 같았다. 각각의 존재는 부정적인 느낌일지 몰라도, 그 둘이 만나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들도 세세히 따지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과 삶을 지닌 인간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저들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맹목적이자 편협한 시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개진하는 태극기 부대도. 자신이 가진 선입견으로 똘똘 무장한 채 세상을 바라보는 한국계 미국인도, 모두 내가 선호하는 인간 군상은 아니다.
누구나 제프의 작품을 좋아했다. 제프의 작품에는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었다.
그렇게 치면 ‘스무드’에 등장하는 것들 대부분 내게 달갑게 다가오진 않는다. ― 작가의 소설이 달갑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제프의 매끈한 작품 ‘스무드’도 입주민 전용공간도 내게는 ‘진짜(혼모노)’가 아닌 ‘가짜(니세모노)’로만 다가온다.
그 둘은 서로 닮았다. 어떠한 슬롯적 메시지도 담지 않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뿐인 ‘스무드’와 입주민만 쓸 수 있는 전용공간의 깔끔하고 매끈한 모습들은 보기 좋고 외형적으로 완벽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게 과연 맞나. 우리들이 마주하는 삶이 늘 매끈할 수 있나. 우리들의 모든 말, 행동 하나하나 전부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하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의 매끈함은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저열한 욕망의 특정 형태일 뿐 아닌가.
설사 그 모든 게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 매끈함이 안과 밖을 가르는 철조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편견과 아집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뇌리를 강타하는 물음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활자를 읽는다.
한편 단편 '스무드'에서 서로가 지닌 편견이 엇갈리는 광경 역시 색다르게 느껴졌다. 한국을 곳곳에 우범지대가 만연한 후진국으로 여겼던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한국계 이민자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한국 음식을 잘 먹을 것이라 여겼던 한국인들. 그들은 그들이 지닌 편견에 갇혀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이 내미는 화살표 작대기는 서로를 향하지만 결국 영영 만나지 않는 직선이 된다.
인간에게는 모두 편견이 있다. 각자의 편견들이 모여 고립된 슬롯를 이루고 불통과 몰이해를 낳는다. 마뜩잖던 주인공들을 반면교사로 삼는다. 적어도 저들처럼 되고 싶진 않다. 세상을 ‘진짜’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면서 우리가 가진 편견을 부수려 끊임없이 시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세 번째 단편은 ‘혼모노’다. 무당을 소재로 쓴 소설이라 다소 거북했다. 나는 무당, 신내림 그런 것들을 믿지도 않고 점을 본 적도 없다. 허무맹랑한 속설을 믿는 이들의 속내가 못내 궁금할 때도 있지만 무속신앙 자체에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물론 소설에서 말하는 바는 알 것도 같았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만인이 평등한 죽음 앞에선 부질없다는 것. 결국 진짜든 가짜든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이치가 소설을 꿰뚫는다.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서사와는 별개로 엉뚱한 질문들이 내 안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다. 신내림, 굿, 무당 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저렇게 신내림을 줬다가 다시 뺐을 거면 저게 무슨 전능한 '신'이지 싶었다. 주인공이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 맛 우유를 놓고 고심할 땐 이렇게 생각했다. 굳이 진짜, 가짜 고민할 필요 없이 다른 ‘진짜’ 생과일주스를 먹으면 되지 않나.
물론 작가가 진짜와 가짜 속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설정한 소설적 장치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지라 평범한 인간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소재가 아니다 보니 조금 뜬구름 잡는 듯한 의문이 맘속에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평소 관심 없던 생소한 분야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봤다는 데에 단편 ‘혼모노’를 읽은 의의를 둔다. 다만 공감을 기반으로 소설을 읽는 나로서는 공감 가지 않는 세계의 일면까지 세세히 살펴보긴 어려웠다.
내게는 익숙하지도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그들만의 세계를 다뤘기에, 이 단편과 주인공의 심정과 상황에 마음이 그리 쏠리진 않는다. 이마저도 작가가 의도한 바일까. 자그마한 의문을 남겨 둔 채 다음 단편으로 시선을 돌린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midjourney, 게티이미지뱅크
인용 출처 :『혼모노』성해나, 창비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