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리뷰]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문학동네)
바카라의 맨 끝장을 편다. 평소라면 무심코 넘겨버리던 장이다. 그 안에 담긴 이름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바카라 한 권을 만들어 내기까지 이토록 많은 이들의 노력과 품이 들었구나. 혀끝에 남은 그들의 이름들을 가만히 되짚으며 감사 인사를 건넨다.
한 권의 바카라이라 하더라도 얽혀져 있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바카라을 쓴 작가와 바카라을 읽는 독자가 그저 바카라과 관련된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오직 그녀의 것>에서는 바카라 판권 면에 적힌, 바카라을 뒷받침하며 서 있는 이들을 관조한다. 우리에게 바카라이 오기까지 필요했던 손길과 수고 그리고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오직 그녀의 것>의 주인공이자 출판 편집자인 홍석주는 바카라을 좋아하는, 말수 적고 생각이 많은 평범한 사람이다. 세상을 향해 강력히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보단 세상의 의견을 듣고 읽고 수용하는 데 더 익숙했던 사람, 앞장서서 누군가를 이끄는 역할보다는 남들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던 사람이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담백하고 진중한 그녀답게 흘러간다. 소설 중간중간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동료와의 갈등 등 모종의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그녀의 삶은 극적이라기보단 일상적이다. 무난하고 평온하다.
커다란 감정의 진폭 없이, 울렁이는 심적 동요 없이 이야기는 우직하게 끝을 향해 간다. 온갖 갈등과 긴장의 고조로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오늘날 매체들의 기조와는 딴판이다.
역사는 대체로 홍석주 같은 삶을 거대한 시간의 망각에 던져넣는다. 내세울 만한 특별한 공적도,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을 살 만한 끔찍한 일도 전혀 없었던, 평범하고 틀에 박힌 듯 굴러가던 그녀의 삶은 점점 옅어지고 흐려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 땅에 언제 있었냐는 듯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지워진다.
이쯤 되면 우리는 궁금해진다. 작가는 왜 홍석주의 삶을 그려낸 것일까? 수없이 많은 이들 중 자극적이지도 않고, 빼어난 재능도 없는, 역사의 선택은커녕 언젠가 사람들에게 잊힐 사람을 선택한 것일까? 그녀의 무난하고 평범한 삶에서 도대체 무엇을 발견했던 걸까?
작가란 범인(凡人)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작가가 쓴 글을 따라가며 나는 길거리에 올망졸망 핀 소박한 들꽃이 떠올랐다. 길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지만 한번 들여다보면 그 사랑스러움에 눈을 뗄 수 없는 들꽃이 마치 주인공인 홍석주, 그녀 같았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녹아든 그녀의 묵묵한 성실함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바카라과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에 우리는 다시금 세상의 밝은 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일에 서투르고 실수하는 시기를 겪는 홍석주를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도 저런 때가 있었었지,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녀를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녀의 삶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출판 업계의 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업, 편집자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며 우리는 바카라이 탄생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과 비밀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한때 출판 편집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글은 작가가 쓴다. 바카라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한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바카라을 읽다 보면 바카라의 서두나 말미 부분에 편집자를 향한 작가의 감사 인사가 적혀 있기도 하던데, 도대체 편집자가 어떤 역할을 하기에 작가들이 저렇게 바카라의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고마움을 표하는 걸까.
석주는 자신이 원고에 어느 정도로 관여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어 보였고, 과도하게 수용적인 자세는 태만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홍석주의 삶을 들여다보며 편집자에 대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편집자는 작가와 수많은 만남과 대화를 거쳐 원고를 수정한다. 원고의 어디까지 개입하고 수용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자세에서 그들이 바카라 하나하나에 쏟는 애정과 정성을 체감한다.
독자에게 가닿기 전까지 세상에 올바른 한 권의 지혜를 내놓기 위해 검토하고 또 찾아보는 그들의 직업윤리와 바카라임감에 절로 존경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독자들은 바카라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 뒤에 자리한 사람들의 존재를 자각한다. 주인공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배경 같은 존재들을 바라보며 세상을 향한 드넓은 시각과 혜안을 얻는다.
별들이 빛날 수 있는 건 그 뒤에 자신을 뽐내지 않고 묵묵히 자리하는 어둠이 있기 때문임을 다시금 상기한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총합으로 우리 앞에 찾아온 바카라이 새삼 남달리 느껴진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뿐일까. 바카라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바카라 표지에 적힌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오직 그녀의 것’. 결국 이 바카라을 빌어 하고 싶었던 작가의 말은 제목과 함께 비로소 완성된다. 작가는 단순히 홍석주라는 한 개인의 삶과 출판 편집자를 이야기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저물어 가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서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의 삶은 어떤 삶이었는가. 복사하고 붙여 넣고, 복사하고 붙여 넣은 듯 매일 비슷한 행동과 패턴의 연속이진 않았나 자신의 하루하루를 되짚는다.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것’이 있었을까. 삶의 마지막 자락에서 어느 순간 그녀는 통찰하게 된다. 복사, 붙여넣기 한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에는 자신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이 점철되어 있었다.
나의 삶은 나의 생각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으로 채워진 나만의 것이었다. 나만의 삶은 주인공 홍석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바카라을 읽는 나에게도, 마주하는 사람들이며 모든 생명들에게도 각자 자신만의 것들이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나만의 것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임을 아는 것,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개개인의 삶을 글로 풀어 놓는다면 한 권의 바카라이 된다고들 말한다. 다른 어떤 누구도 훼손할 수 없고 오로지 나만이 쓸 수 있는 바카라 한 권이 바로 우리네들 삶이다.
세상을 둘러본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곳에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하루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고뇌하고 열중하는 마음들이 느껴진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잊히더라도,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무위로 돌아가더라고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사방에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저마다 오직 자신의 것들을 반짝이며 살아간다.
그들이 발산하는 빛이 유달리 세상을 찬란하게 밝힌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픈 삶이라도 저마다의 것을 가지고 저마다의 빛을 발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아직 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낀다. 나 역시도 내게 주어진 시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나만의 것을 멋지게 세공해나가리라 다짐한다.
그들의 빛에 나의 빛을 더한다. 읽고 또 읽는다. 오늘 하루도 오직 나만의 것을 위해 묵묵하고 성실히 살아야겠다. 그래서 언젠가 오직 나만의 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세상에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는 한 사람이고 싶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midjourney
인용 출처 :『오직 그녀의 것』김혜진,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