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화내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마음의 비밀
"장난감 또 사달라고? 지난번 것도 안 갖고 놀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어붙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낯선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화는 분명 아이를 향했는데, 왜인지 그 화가 익숙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투, 어디선가 느껴본 억울함. 마치 오래전 내가 듣던 말을, 이번엔 내가 아이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잘못했으니까.' '버릇을 잘 들여야 하니까.' 그럴듯한 이유는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화를 내고 난 뒤 밀려오는 감정은 정당함이 아니라 후회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아이의 그 작은 요구가, 정말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었을까.
여기서 잠시 멈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마음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내면아이'라고 부릅니다. 어릴 적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감정, 표현하지 못한 서러움, 이해받지 못한 순간들이 몸은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 한켠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일이니 잊고 앞만 보고 가자고 다짐해도, 감정의 응어리는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그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지금의 나를 흔듭니다.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유독 크게 화를 내는 부모가 있다면, 그 뒤에는 종종 이런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어릴 적 자신도 무언가를 갖고 싶었지만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기억. 울어도, 떼를 써도 소용없다는 걸 일찍 배워버린 마음. 그런 사람은 자라서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편하게 사달라고 해본 적도 없는데, 왜 내 아이는 이렇게 쉽게 조르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큼 자신의 어린 시절이 아프게 남아 있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흘러갑니다. 슬롯생활에서는 체면 때문에, 관계 때문에 눌러 참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감정은 안전한 곳, 만만한 곳을 찾아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자리에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 가장 힘없는 존재인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 앞에서는 아이가 그 감정을 받아내는 자리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죄바카라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몰랐을 뿐입니다. 알고 나면,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 뇌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짚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내면소통 연구로 잘 알려진 김주환 교수는 우리가 느끼는 화, 짜증, 걱정,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바로 불안입니다. 이 감정들은 뇌의 편도체가 위협을 감지했을 때 울리는 경보음과 같습니다. 편도체가 켜지면 몸은 곧바로 위기 대비 태세로 들어갑니다. 턱과 어깨 근육이 굳고, 호흡이 얕아지고, 차분히 생각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이성이 아니라 경보음에 따라 반응하게 됩니다.
아이의 사소한 요구 앞에서 순간적으로 화가 폭발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아이가 정말 위협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아이의 그 요구가, 오래전 해결되지 못한 불안의 스위치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편도체 입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과 그 시절의 불안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화를 낸 뒤에는 늘 이런 물음이 남습니다. '나는 방금 무엇에 그렇게까지 반응한 걸까.' 원인이 같다면, 다행히 다루는 방법도 같습니다. 편도체의 경보음을 잠재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내면아이를 치유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 그때 듣고 싶었던 말을 지금의 내가 건네주는 일입니다. "그때 많이 서러웠겠다." "울어도 괜찮았는데." 그 한마디가 시작입니다. 모른 척 밀어두지 않고, 알아주는 것.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오늘, 잠시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세요.
아이에게 유독 크게 화가 나는 순간이 있다면, 그 감정은 정말 지금 이 순간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 화 속에, 아직 위로받지 못한 어린 내가 함께 서 있는 건 아닐까요?
거창한 답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그저, 화가 올라오는 순간 한 박자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금 이 감정, 정말 아이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된 내 마음일까.' 그 질문 하나가, 아이에게 향하던 화살의 방향을 조금 바꿔줍니다.
당신은 나쁜 부모가 아닙니다. 다만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마음을 함께 안고, 아이를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대물림되던 감정의 고리도 조금씩 느슨해집니다.
"내 안의 아이를 먼저 안아줄 때, 내 아이도 온전히 안아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