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이름의 감정소모, 그 90초의 비밀

불안은 왜 이렇게 오래 머무를까

by두유진

“선생님, 저 오늘 학부모 상담 있어요..”


후배 교사의 마음은 벌써 요동치고 있었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고, 손끝이 살짝 차가워지고, 머릿속엔 온갖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간다.

*혹시 항의성 전화면 어떡하지.* 상담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몸은 이미 전투태세였다.


부모도 다르지 않다. 아이 알림장에 “통화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 하나만 봐도, 하루 종일 마음이 붕 뜬 채로 흘러간다. 저녁밥을 차리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머릿속 한켠은 그 문장을 떠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 감정을 흔히 ‘스트레스’라고 부르지만,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대개 하나의 이름으로 수렴된다. 불안이다.


불안은 왜 이렇게 오래 머무를까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몸에서 만들어내는 화학적 반응, 그러니까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나는 그 생리적 파도는 사실 90초 정도면 지나간다고 한다. 감정은 원래 짧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파도처럼 빠져나가도록 우리 몸은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루 종일, 심지어 며칠씩 그 불안을 붙들고 사는 걸까.


답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붙잡고 되뇌는 우리의 생각에 있다. “그 학부모가 또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번에도 나만 못하는 부모인 걸까” — 이 문장들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는 순간, 90초짜리 감정의 파도는 몇 시간, 며칠짜리 감정소모로 늘어난다.


즉,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불안에 붙여진 이야기다.



교사와 부모, 같은 자리에서 다른 무게를 진다.


교사는 한 아이가 아니라 스무 명, 서른 명의 마음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 그 안에서 학부모 한 사람의 연락, 한 통의 문자에도 온 신경이 곤두선다. 부모는 반대로 단 한 아이지만, 그 아이가 세상의 전부이기에 작은 신호 하나에도 마음이 요동친다.


두 자리는 다르지만, 감정의 결은 닮아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바카라임감이 무거울수록, 불안은 더 크고 오래 머무른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이 쉽게 지친다면, 그것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진심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다루는 첫걸음, 이름 붙이기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감정 조절을 잘한다는 건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감정에게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 지금 불안하다.” “나 지금 걱정되고 있다.” 이렇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 그 순간, 뇌 속에서 감정을 증폭시키던 회로가 잠시 느슨해진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반대로 과장해서 표현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불안이라는 파도를 90초 안에 지나가게 두는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보는 것. 학부모의 반응, 아이의 미래, 동료의 평가는 대부분 내 손 밖에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말을 건네고, 어떤 태도로 마주할지는 온전히 내 몫이다. 그 작은 영역에 집중할 때, 흩어졌던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



오늘의 질문 NOTE


오늘 하루,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순간 내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나요?

그리고 그 불안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었나요?



불안이 밀려오는 순간, 잠시 멈추고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세요.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불안이야. 이건 90초면 지나갈 파도야.”

그리고 숨을 천천히 세 번 들이쉬고 내쉬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불안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지나가도록 허락해야 할 손님입니다.

당신이 오늘 느낀 그 불안은, 아이를 향한 마음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갑니다.” - mind g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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