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이 채워준 마음

by단미

마음마저 느긋한 주말 아침이다. 그런 마음과 달리 습관대로 일찍 눈이 떠진다. 최대한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오래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몸을 일으킨다.


잠옷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주변을 살핀다. 어젯밤에 어질러진 모습 그대로다. 반려묘 쩡이의 생쥐 모양 장난감이 거실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있고, 읽다 만 바카라은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다. 남편의 가방은 식탁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휴~ 뭘 해 먹지?’

눈을 뜨자마자 먹을 것을 고민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들이 있는 주말이면 무엇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로 사느라 음식 하는 것을 배울 틈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가 될까? 맞벌이하면서 요리까지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핑계를 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요리 못하는 엄마가 주말에 해줄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손질된 오징어, 삼계탕용 닭, 양배추, 가지, 상추, 콩나물.... 냉장고 속 재료들도 요리 못하는 엄마의 머릿속처럼 어수선하게 뒤섞여 있다.


‘좋아, 오늘은 백숙이다.’

특별한 요리 실력이 필요하지 않은 백숙. 마침, 복날도 다가오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 같다.

포장된 닭을 꺼내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군다. 뱃속에 쌀을 넣을 생각은 없으니 배를 가르고, 잡내를 유발한다는 핏덩이를 찾아 제거한다. 노란 기름 덩어리도 잘라낸다. 깨끗하게 씻은 닭과 백숙용 재료를 압력솥에 넣고 가스불을 켠다.


치지지지직.

소리가 요란하게 집 안을 꽉 채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백숙다운 냄새가 퍼진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스며든 냄새를 확인하며 혼자 피식 웃는다. 그때 오후에 출근한다는 아들이 주방으로 들어온다.


“너를 위해 백숙을 준비했어. 먹을래?”

“응”


큰 그릇에 닭 한 마리를 담는다. 국물도 넉넉히 담고 송송 썬 파와 소금까지 곁들이니 제법 그럴싸하다. 식탁에 올려놓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오~ 제법인데.’


아들이 닭을 한 입 먹더니 말한다.


“엄청 부드러운데?”

“그래? 맛있어?”

“응, 맛있네~”

“하하. 다행이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아들은 닭 한 마리를 아주 깔끔하게 다 먹었다. 뼈만 남겨놓고. 이렇게 뿌듯할 수가 있을까. 한 입도 먹지 않은 내가 배부른 느낌이다. 어른들이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더니, 이런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아들은 출근을 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로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 해낸 것 같다.


나에게 주말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온라인 게임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주부로서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편안함과 불편함이 함께 존재하는 시간. 그중에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뭘 해 먹지?’

요리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고민일지 모른다. 하지만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꽤 오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다.


어설프게 만든 음식도 엄마가 해주면 이렇게 잘 먹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일한다는 핑계로, 늘 바쁘다는 이유로 먹을 것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아이가 어릴 때도 그랬지만, 성인이 된 지금 그 마음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아마 나는 평생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 만큼은 미안함을 조금 내려놓고 싶다. 엄마가 해준 백숙을 맛있게 먹고 출근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보다 흐뭇함이 더 컸으니까.


닭 한 마리를 남김없이 다 먹은 아들의 빈 그릇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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