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별로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 남는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내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편이 아니다. 메뉴를 정할 때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할 때도 있지만, 먹고 싶은 게 있는데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여행을 가도 비슷하다. 꼭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곳에 맞추는 편이 편하다. '나는 여기 가고 싶은데.' 그 한마디를 하면 그때부터 의견을 맞춰야 한다. 누군가는 양보해야 할 수도 있고, 괜히 나 때문에 계획이 달라지는 것도 신경 쓰인다. 그럴 바에는 내가 맞추는 게 편하다. 모두 기분 좋고, 나도 그럭저럭 괜찮고.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가끔 이상한 순간이 찾아온다. 분명 내가 계속 맞춰주고 있는데 아무도 그걸 모르는 것 같을 때 말이다. 당연하다. 내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아무거나 좋다고 했고, 어디든 괜찮다고 했고,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에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쯤은 내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 줄 수도 있잖아.' 이렇게 생각하다가 스스로도 조금 어이가 없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친절하고 싶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조금 다른 마음도 숨어 있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도 싫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싫었다.
특히 평소와 다르게 내 의견을 분명하게 말한 날이면 집에 와서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너무 세게 말했나?'
'기분 나빴으려나?'
'그냥 넘어갈 걸 그랬나.'
이미 끝난 대화를 혼자 다시 한다. 상대방은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오후에 했던 말 한마디를 붙잡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좋게 이야기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기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인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확인. 그런데 아무리 조심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다. 말이 없어서 싫다는 사람도 있고, 말이 많아서 싫다는 사람도 있다. 내 친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만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허무하기도 하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싶다. 이왕이면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이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안에서 나까지 빼놓지는 않으려고 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끔은 말하고, 하기 싫은 일에는 어렵다고도 해보고, 내 생각이 다르면 굳이 같은 척하지 않는다.
아직은 이런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말해놓고 집에 와서 또 '괜히 말했나.'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생각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못 되더라도, 적어도 나한테까지 불편한 사람으로 살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