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기는 어디에나 꼭! 필요하다
쓸쓸함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 처음부터 이 단어가 좋아! 했던 것은 아니고 타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든 단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쓸쓸하다는 건 날씨가 추워져서 긴 소매 옷을 꺼내 입고 오소소 소름 돋은 팔을 살살 쓸어내릴 때 느끼는 단어가 아니었다.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생명력을 절실하게 느낀 계기가 있었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진한 짝사랑을 하면서 그 무게감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둘이서 알콩달콩 사랑할 때보다 훨씬 더 고독하면서도 그 와중에 짜릿함도 겸비한다는 것이 나름대로 신선했지 말이다.
짝사랑이란 게 그랬다. 매번 우중충하지도 않지만 늘 반짝거리지도 않았다. 짝사랑의 장점은 혼자만 레벨업 되듯 단독으로 현재 진행 중이라 시작도 그랬듯 끝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 그 친구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얼굴을 보면 제대로 된 인사 한 마디 못했던 사람이라 과연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요즘 말로 현타라는 것이 제대로 왔다. 그러면서 문자로는 연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사이버 러버와 무엇이 다른가 싶기도 했고. (짝)사랑을 한다 당당하게 이름표를 붙인 행동에 자괴감이란 것이 조금씩 스며들었고 무엇을 위한 몸부림인가 진지하게 되새겨 보면서 더 이상은 이러지 말아야지 했다. 문장속의 나와 현실의 나의 격차가 너무 컸고 그 친구 보기가 몹시 부끄럽고 곤란했다. 저 아인 사이코 패스인가 싶었을 것도 같고 문자론 세상 왈가닥 유머러스한 애인데 왜 현실에선 비구니 스님처럼 굴지? 싶었을 것도 같았다. 사랑이라 부르는 행위가 가짜 같아서 이뤄질 수 없을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혼자만의 사랑이 된 것 같다는 인식도 있었다.
어른이 느끼는 쓸쓸함이란 참 서글프다는 생각도 했고 스스로 자문해 본 사랑이 시작도 끝도 너무 미비하여 하찮게 변질이 된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이론으로 익혔던 지식을 실전에서 다루게 될 때 드러나는 진실들은 무척 불편한 것이었고 견뎌야 하는 두려움고 고통은 몇 배로 늘어났다. 쓸쓸함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른 것이라 발라드 가수가 불러주는 노래 한 곡에 감수성 살짝 얹어 이러면 즐길 수 있을 거야 했던 것도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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