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도전 리더십과 성공 전략 3

03 - 10장. 정의선의 다음 승부수, Physical AI

by김용년

10장. 정의선의 다음 승부수, Physical AI


지난 몇 년 동안 인공지능은 거센 파도처럼 밀려와 세상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AI는 정교한 그림을 그리고, 수천 줄의 코드를 순식간에 짜내며,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만약 챗GPT에게 “당장 물 한 잔만 떠다 달라”고 부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화면 위에는 물의 분자 구조와 갈증 해소의 원리가 빼곡히 적히겠지만, 그 어떤 천재적인 알고리즘도 모니터를 뚫고 나와 바카라상 위의 컵을 손에 쥐어주지는 못한다. 생각할 수는 있지만 움직일 수 없고, 답은 알지만 물리적 손발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펼쳐질 AI 산업의 진짜 승부처는 어디일까? 더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알고리즘을 쥐고 있는 빅테크일까, 아니면 그 지능에 단단한 육체를 입혀 현실 세계를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제조기업일까?


화면 속 지능이 중력과 마찰이라는 물리 법칙과 만나는 접점에서 바로 그 새로운 승부처가 열린다.


이것이 바로 정의선 회장이 던진 다음 승부수, ‘피지컬 AI(Physical AI)’다.


지금까지 생성형 AI가 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질문에 답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면, 피지컬 AI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한 뒤 현실 세계에서 직접 행동하는 지능이다. 자율주행차는 젖은 노면과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감지해 속도와 제동을 조절한다. 로봇은 물체의 위치와 형태를 파악한 뒤 필요한 힘으로 사물을 잡는다. 공장의 AI는 설비의 진동과 온도 변화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아내고 대응을 돕는다. 이제 인공지능은 중력과 마찰, 충격과 진동이라는 현실의 물리 법칙까지 고려하며 움직이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실제로 움직일 몸이 없다면 물리적인 일을 수행하기 어렵고,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도 지능이 부족하면 복잡한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 시대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래 전략은 바로 이 질문과 맞닿아 있다. 현대차그룹에는 전 세계 도로를 달리는 현대차와 기아 차량, 대규모 자동차 공장, 수많은 협력사와 연결된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있다. 이제는 이러한 산업 기반 위에 AI와 로봇 기술을 더해 자동차 제조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자동차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는 과거의 자동차와 다르다.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 등 다양한 센서가 도로와 주변 환경을 살피고, 고성능 컴퓨터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소프트웨어는 차량의 여러 기능을 제어하며,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통해 출고된 차량에도 새로운 기능과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단순한 기계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결합된 이동형 디지털 기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AI가 깊숙이 결합하면 자동차의 역할은 한층 더 확장된다. 실제 차량에서 발생한 주행과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그 결과를 다시 차량에 적용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현대차그룹이 구축하려는 ‘데이터 플라이휠(Data Flywheel)’은 이렇게 현실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AI를 학습시키며, 개선된 기술을 다시 현실에 적용하는 지속적인 학습 체계다.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와 생성형 AI 에이전트 글레오(Gleo) AI 등도 이러한 데이터 기반 전략과 연결된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포티투닷, 모셔널 등이 확보하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동차를 많이 판매할수록 대량생산의 이점이 커졌다면, AI 시대에는 실제 도로에서 다양한 경험을 얻을 기회도 넓어진다. 물론 차량이 많다고 모든 데이터가 자동으로 경쟁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데이터의 품질을 확보하면서 이를 기술 개선에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마르코 이안시티(Marco Iansiti)와 카림 라카니(Karim R. Lakhani)가 『Competing in the Age of AI』에서 제시한 통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학자는 기존 업무에 AI 프로그램 몇 개를 추가하는 것만으로 기업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기업의 운영 방식 자체를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바꿔야 AI의 경쟁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AI 팩토리(AI Factory)’다. 기업이 데이터를 활용해 알고리즘을 학습시키고, 그 결과를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운영체계다. 이 원리를 피지컬 AI에 적용하면 자동차에서 시작된 학습의 무대가 다양한 기계와 산업현장으로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몸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도로 위에서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계단을 오를 수는 없다. 공장 조립 라인의 협소한 틈새로 손을 뻗어 볼트를 조이거나, 복잡한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하는 작업도 수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동차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새로운 몸이 등장한다.


바로 로봇이다.


여기서 우리는 2020년 말 세계 로봇 산업을 놀라게 했던 한 가지 인수 결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세계적인 기술 기업들이 일찍부터 가능성을 주목했던 회사다. 2013년 구글이 인수했고, 2017년에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인수를 발표했다. 구글은 이후 회사를 매각했고, 소프트뱅크도 2020년 현대차그룹에 지배지분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2021년 6월 거래가 완료되면서 현대차그룹 측은 약 80%의 지분을 확보했고, 소프트뱅크 측은 나머지 약 20%를 보유하게 되었다. 특히 정의선 회장은 그룹 계열사들의 투자에 더해 자신의 사재 약 2,500억 원을 투입해 지분 20%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첨단 로봇 사업에 개인 자금까지 투자한 것이다. 세계적인 기술 기업과 투자회사가 거쳐 간 로봇 기업에 대한민국 자동차 제조기업이 새로운 승부수를 던진 순간이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잇따라 매각을 결정한 로봇 회사에서 정의선 회장은 도대체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로봇 산업의 가장 어려운 과제를 살펴봐야 한다. 사람처럼 걷고 뛰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과 그 로봇을 수많은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작동시키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구글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고, 소프트뱅크는 첨단 기술에 투자하며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온 글로벌 투자그룹이다. 두 기업 모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가능성을 알아보았고, 소프트뱅크는 로봇의 상용화 과정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첨단 로봇을 실제 산업현장에서 널리 사용하려면 뛰어난 알고리즘과 자본만으로는 부족하다. 로봇의 관절 하나에도 정밀한 모터와 감속기, 센서와 제어장치가 들어간다. 이러한 부품들은 수없이 반복되는 동작과 충격을 견뎌야 하고,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해야 한다. 수천 대, 수만 대를 생산하더라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해야 하며, 고장이 나면 신속하게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고객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과 유지비용도 갖춰야 한다. 소프트웨어의 뛰어난 두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두뇌를 현실에서 움직이게 할 뼈와 근육, 그리고 수많은 로봇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제조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 순간, 현대차그룹이 등장한다.


현대차그룹은 수십 년 동안 자동차라는 복잡한 기계를 대규모로 생산해왔다. 수많은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하고, 세계 곳곳의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으며,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경험을 쌓아왔다. 자동차 한 대에도 모터와 센서, 전자제어장치와 수많은 기계 부품이 들어간다. 이 모든 부품을 안정적인 제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해온 경험은 첨단 로봇의 산업화에도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물론 자동차를 잘 만든다고 곧바로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로봇은 구조도 다르고 해결해야 할 기술적 어려움도 많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생산기술과 품질관리, 부품 공급망은 로봇 산업에서도 강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정의선 회장의 인수 결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사람처럼 걷고 공중제비를 도는 로봇의 놀라운 기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로봇 기술과 현대차그룹의 제조 역량이 결합하면 기존의 자동차 사업을 넘어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다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한 장면을 상상해보자.


미국 디트로이트의 거대한 자동차 조립 라인. 용접 불꽃이 번쩍이는 생산 현장에서 수백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로봇은 정밀한 움직임으로 무거운 부품을 들어 올려 차체에 정확히 맞추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위험한 작업 공간에 강철 팔을 뻗는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완성차 공장에서도, 일본 나고야의 대형 물류센터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이 로봇들이 대한민국 현대차그룹의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투어 도입하는 이 로봇에는 첨단 인공지능과 현대차그룹이 오랫동안 쌓아온 제조 기술이 결합되어 있다. 한때 공중제비를 돌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로봇이 이제는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사람을 돕고, 무거운 일을 해내는 산업현장의 주역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세계는 대한민국 제조업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될까?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을 선도해온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이 울산과 남양, 새만금으로 찾아와 한국의 양산 기술과 품질관리 시스템을 연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때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품었던 구글과 소프트뱅크의 경영진도 자신들이 먼저 주목했던 로봇 기술의 새로운 성장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부러움을 함께 느끼게 될지 모른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뛰어났는지를 가리는 일이 아니다. 뛰어난 기술이 세계 각국의 연구와 투자, 제조 경험을 거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의 연구원과 기술자, 생산현장 직원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이 첨단 로봇 기술과 만나 세계 산업현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세계 최고의 알고리즘과 대한민국의 뛰어난 제조 엔지니어링이 결합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놀라운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정의선 시대 현대차그룹의 가장 흥미로운 도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제조업은 선진국이 앞서 개발한 기술을 배우고, 더 좋은 품질과 높은 생산성으로 경쟁하며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산업의 기준을 만드는 데 도전하고 있다.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선도자(Rule Maker)로 나아가는 도전이다. 다만 미래 산업의 기준을 만드는 기업이 되려면 새로운 기술을 보유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안전성과 성능을 입증해야 한다. 정의선 회장의 승부는 바로 그 검증을 통과하는 데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과제는 인공지능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학습시키는 일이다. 초보 운전자에게 운전 실력을 키우라며 수많은 사고를 직접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값비싼 로봇을 실제 공장에서 계속 넘어뜨리고 설비와 충돌시키며 훈련할 수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의 시행착오는 막대한 비용과 안전사고의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지컬 AI 시대에는 실제 공장 못지않게 가상의 훈련장이 중요하다. 현실의 생산라인과 작업 환경을 디지털 공간에 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로봇이 물건을 집어 올리다가 균형을 잃거나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나는 상황을 가상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실험할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위험한 실험도 디지털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의 훈련장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복잡한 물리적 움직임을 계산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이 세계적인 반도체·AI 기업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옴니버스(Omniverse)와 코스모스(Cosmos) 등 디지털 트윈과 피지컬 AI 관련 기술을 활용하는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25년 10월에는 엔비디아와 함께 5만 장 규모의 NVIDIA Blackwell GPU를 기반으로 AI 모델의 개발과 검증, 실제 적용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대규모 연산 인프라를 준비한다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AI를 일부 업무를 돕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 자동차와 로봇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기반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 기술들이 하나로 연결되면 피지컬 AI의 학습 과정이 완성된다. 먼저 현실의 자동차와 로봇, 공장에서 데이터를 얻는다. 이를 바탕으로 가상공간에 다양한 도로와 작업 환경을 구현하고, 고성능 GPU를 활용해 AI가 수많은 상황을 학습하도록 한다. 가상환경에서 성능을 높인 AI 모델은 충분한 안전 검증을 거쳐 실제 차량과 로봇에 적용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나타난 오류와 새로운 상황은 다음 학습 과정에 반영된다. 현실에서 경험하고, 가상세계에서 학습하며, 다시 현실에서 검증하고 개선하는 거대한 순환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가상환경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는 일이다. 컴퓨터 안에서 완벽하게 움직이던 로봇도 실제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나 센서 오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격차를 좁혀내고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며 경제적인 양산으로 이어가는 능력이 피지컬 AI 경쟁력의 본질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차그룹의 경쟁자도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테슬라처럼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연결하려는 기업이 있고, 전기차와 로봇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중국 기업들도 있다. 세계적인 빅테크 역시 막대한 AI 기술과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경쟁에서 모든 기술을 혼자 개발하기보다 핵심 역량을 내부에 쌓으면서 외부의 뛰어난 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의 경쟁력은 개별 기술 하나의 우위보다 서로 다른 기술의 강점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기아 R&D본부장(사장)이 글로벌 무대에서 “서로 다른 기술의 강점을 연결하는 것이 미래 모빌리티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프트웨어에서는 포티투닷과 플레오스를 중심으로 역량을 강화하고, AI 연산과 시뮬레이션에서는 엔비디아와 협력하며,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구글 딥마인드와 차세대 로봇 지능을 함께 연구하는 유기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아가 아마존의 대표 AI 플랫폼 ‘알렉사(Alexa)’의 성장을 이끌었던 로히트 프라사드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신임 CEO로 전격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독보적인 로보틱스 역량에 글로벌 빅테크의 AI 플랫폼 및 사업화 경험을 결합한 것은, 연구실의 로봇 기술을 넘어 실제 공장 배치와 대량 양산이라는 피지컬 AI 상용화를 향한 중요한 승부수로 볼 수 있다. 핵심 기술은 스스로 키우고, 부족한 역량은 세계 최고의 파트너와 최고 인재를 통해 연결해 채우는 전략이다.


정의선 회장이 그리는 피지컬 AI(Physical AI)는 화려한 콘셉트나 먼 미래의 투자 구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상 세계에 머물던 인공지능을 실제 공장과 이동 공간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생산·학습·상용화 인프라로 구체화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HMGMA)의 부품 서열 작업 등에 단계적으로 투입하고, 2030년에는 부품 조립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룹 차원에서는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실제 공장 환경에서 로봇을 학습하고 검증하는 RMAC(Robotics Metaplant Application Center)을 운영하고 있으며, 새만금에는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수소·재생에너지 인프라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혁신 거점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차량이 움직이는 도로, 로봇이 작업하는 공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AI와 에너지 인프라가 서로 연결될수록 현대차그룹이 구상하는 피지컬 AI 생태계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진다. 대규모 제조 현장에서 축적되는 실제 데이터를 AI와 결합해 기계가 물리적 세계를 인지하고 판단하며 작업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기술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운영할 산업 기반을 갖추는 일이다. 현대차그룹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추진하는 대표적인 사업이 있다.


바로 전북 새만금에 조성하려는 대규모 AI·로봇·에너지 산업단지다.


2026년 2월 27일, 현대차그룹은 정부 및 전북특별자치도 등과 새만금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계획은 약 9조 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해 새만금을 로봇과 AI, 수소 에너지의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공장 하나를 세우는 사업이 아니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제품으로 만들며,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기반까지 함께 준비하는 대규모 미래 산업 구상이다.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보면 AI 데이터센터에 약 5조 8천억 원,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에 약 4천억 원, 수전해 플랜트에 약 1조 원, 태양광 발전에 약 1조 3천억 원, AI 수소 시티에 약 4천억 원이 배정되어 있다. 각각의 사업은 역할이 다르지만 서로 연결될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첨단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기반이 되고, 로봇 제조시설은 그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생산한다. 수소와 재생에너지 관련 시설은 장기적으로 이러한 미래 산업을 뒷받침할 에너지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로봇 파운드리(Foundry) 구상이다.


파운드리는 다른 기업이 설계한 제품을 대신 생산하는 사업을 말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기업과 제조기업이 협력하듯, 로봇 산업에서도 뛰어난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전문 제조기업에 대량생산을 맡기는 시장이 열릴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 연간 최대 3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 능력을 갖춘 제조시설을 조성하고, 다른 기업의 로봇까지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좋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생산시설이 부족했던 국내 로봇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기존 자동차 부품업체 역시 정밀 기계와 전자제어장치 등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로봇 산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연간 최대 3만 대는 현재 달성한 실적이 아니라 앞으로 갖추려는 생산 능력의 목표다. 실제 투자 규모와 일정, 양산 성과는 앞으로의 사업 진행에 따라 확인해야 한다. 다만 계획은 구체적인 준비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2026년 9월 새만금개발청은 현대차그룹 AI 데이터센터의 건축심의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공개된 일정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는 2027년,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는 2028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로봇 클러스터는 2029년 완공을 추진하는 계획이다. 향후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은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발표했던 미래 산업 구상을 실제 시설과 생산 기반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경영학적 통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론토대학교의 아제이 아그라왈(Ajay Agrawal), 조슈아 간스(Joshua Gans), 아비 골드파브(Avi Goldfarb)는 『Power and Prediction』에서 인공지능의 경제적 가치가 단순히 기존 업무를 빠르고 편리하게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AI의 예측 능력이 발전하면 개별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의사결정과 업무 방식, 나아가 전체 운영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해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있다.


이 관점에서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전략을 바라보면 흥미로운 의미가 드러난다.


과거에는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자가 원인을 찾아 설비를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충분히 발전하면 설비의 이상 징후를 미리 발견하고, 생산 일정을 조정하며, 필요한 작업에 로봇을 활용하는 운영방식이 가능해진다.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생산계획을 다시 세우고, 작업환경이 달라지면 로봇의 동작을 조정하는 식이다. 개별 기계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공장 전체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하도록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정의선 시대 현대차그룹의 다음 승부수는 새로운 기계를 몇 대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미래 제조업의 운영방식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차그룹의 3대에 걸친 경영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아산 정주영 창업주는 산업 기반조차 부족했던 대한민국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자동차 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자동차를 만들어내며 대한민국 제조업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그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품질을 높이고 세계 곳곳에 생산공장을 세우며 현대차그룹을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정의선 회장은 선대가 일군 거대한 제조업의 몸에 자율주행차와 소프트웨어, 데이터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두뇌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 로봇이라는 새로운 손과 발까지 갖추면서 현대차그룹의 활동 무대는 도로를 넘어 공장과 물류센터, 다양한 산업현장으로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담한 구상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 가능성과 사업의 성공은 서로 다른 문제다. 완전 자율주행에는 여전히 제도적·슬롯적 문턱이 남아 있고,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지탱할 전력과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도 무거운 과제다. 사람이 일하는 생산 현장에 로봇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만큼, 노동자의 안전 확보와 일자리 변화에 대한 슬롯적 합의 역시 피할 수 없는 시험대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투자가 실제 현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입증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선 회장의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는 것은 시작이었다. 새로운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도 중요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경영자의 진정한 능력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능성을 실제 성과로 바꾸어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세계적인 기술을 고객이 선택하는 제품으로 만들고, 안정적인 생산과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큰 분야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업에는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와 기업의 재무적 바카라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경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실제 사업으로 완성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소프트웨어와 제조 분야의 인재들이 서로 협력하며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경영자는 세계적인 인재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실패에서 배우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선대가 남긴 유산은 그 자체로 완성된 미래가 아니다.


위대한 기업의 가치는 과거의 성공을 얼마나 오래 지키느냐가 아니라, 그 유산을 디딤돌 삼아 다음 시대의 길을 열어내는 결단에서 증명된다. 물려받은 강점을 지키되, 그 강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바로 창도전진(創道前進)의 정신이다.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100년 전통의 기업이 인공지능에 몸을 입히고 공장의 운영 방식을 근본부터 다시 쓰겠다는 선언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거대한 도전으로 보일지 모른다.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 생산 라인에서 로봇과 인간의 안전한 공존, 그리고 천문학적인 투자 대비 지속 가능한 수익성에 이르기까지 그 앞에는 넘어야 할 현실의 시험대가 버티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의 뇌와 로보틱스의 팔다리, 그리고 반세기 동안 축적한 제조 엔지니어링의 뼈대를 성공적으로 결합해 낸다면, 이는 완성차 기업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피지컬 AI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다음 10년은, 화면 속 지능이 현실을 움직이는 물리적 힘으로 바뀌는 바로 그 경계에서 시작되고 있다. 과연 정의선은 실리콘밸리의 알고리즘과 울산·새만금의 제조 현장을 어떻게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내고 있는가? 그가 세계적인 기술 기업들과 치열하게 구축해가고 있는 글로벌 AI 동맹의 전략을 살펴보자.






[목차 안내]


바카라 제목 :『정의선의 도전 리더십과 성공 전략』


대한민국 3세대 경영자 시리즈 제1권


서문. 승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라

1장. 왜, 지금 정의선인가?

2장. 현대차를 만든 두 거인, 정주영과 정몽구

에피소드 1. 뚝심에서 혁신으로


(중략)


4장. 기아에서 시작된 정의선의 첫 번째 승부

에피소드 2. “그럼, 해보죠”


(중략)


9장. 왜 정의선은 로봇에 베팅했는가?

10장. 정의선의 다음 승부수, Physical AI

에피소드 7. 정의선의 글로벌 AI 동맹


(중략)


14장. 정의선의 경영 철학

15장. 사람을 얻는 정의선의 인사 철학

에피소드 11.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정의선


(중략)


19장. 정의선의 3대 도전 과제와 돌파 전략

20장. 현대차여, 창도전진(創道前進)하라

21장. 정의선에게 배우는 10가지 성공 전략


성공전략 01. 초심을 기억하라

성공전략 05. 최고의 사람을 데려와 맡겨라


(중략)


성공전략 10.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라


정의선 회장님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

저자소개






■ 저자 소개


김용년 (Kim Yongnyeon)


삼성에서 30년간 기업 경영과 글로벌 인재 육성의 현장을 경험한 경영 저술가이자 작가. 삼성물산에서 인사, 전략, 해외 사업을 담당했고, 삼성장학회에서 20년간 글로벌 장학사업을 총괄하는 임원으로 일하며 하버드, MIT, 스탠퍼드, 옥스퍼드 등 세계 유수 대학의 우수 인재 1,000명 이상의 선발과 성장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공학·자연과학 분야 연구 논문을 읽고 석·박사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사람의 역량과 첨단 기술이 결합해 혁신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기술 자체를 해설하기보다, 리더가 어떤 인재를 선택하고 어떤 조직을 만들며 어떤 미래에 자원을 배분하는지를 경영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국내외에서 20권의 바카라을 출간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왔다. 대표작으로 『성장을 위한 마음 편지』, 『노력형 천재들의 공부법』이 있으며 아마존(Amazon)을 통해 영문 도서를 출간했다. 현재 동서양 고전의 지혜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주요 기업들의 변화와 도전을 독립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조명하는 『대한민국 3세대 경영자 시리즈』를 기획해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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